가난은 처음엔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비어 있는 지갑,
텅 빈 냉장고,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이력서 속에서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은
집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말없이 마주 앉은 식탁,
서랍 안에 쌓여가는 고지서,
여름밤에 멈춰 선 선풍기 아래의 땀 냄새.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말들 속에서.
누구도 화내지 않았고,
크게 울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하루를 넘겼다.
너무 오래, 가난은 익숙한 배경음처럼 존재했고
나는 그것을 '원래 그런 것'이라 여겼다.
가난은 점점 작아졌다.
드러나 있던 모습들은 사라졌고,
이제는 뉴스 자막 아래 흐르는 글처럼 남았다.
비난도, 연민도 닿지 않고
그저 투명하게 떠 있는 그림자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물을 데우고,
밥 대신 뜨거운 국물로 속을 달랬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 아래,
스스로를 감싸 안고 잠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가난이라는 이름은
슬픔보다 조용하고,
외로움보다 익숙하며,
두려움보다 가까운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난은 오늘도
우리가 괜찮은 척 웃는 이유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려고
입꼬리를 올리는 작은 습관이다.
그 습관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앞에 둔 무대 연습처럼 반복된다.
그렇게 오늘도,
가난은 조용히,
우리 삶 깊은 곳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