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의 빈칸
나는 회사를 “감정 없이” 다닌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애쓰는 쪽이었다. 일은 숫자와 일정으로 정리되는데, 사람 마음은 정리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는 것을 끌어안으면 결국 누군가 다친다. 그게 내가 배운 방식이었다.
강지안이 우리 팀에 온 3월, 나는 평소처럼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온보딩 자료 공유, 계정 세팅, 업무 프로세스 설명, 첫 주 미팅 동행. 입사자는 늘 불안하고, 불안은 결국 실수로 이어진다.
실수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마음을 달래주는 게 아니라 구조를 주는 거다.
“지안님, 온보딩 자료는 드라이브에 정리해뒀어요. 필요하면 말씀 주세요.”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지안의 표정을 살폈다. 익숙한 긴장. 초보자의 긴장이 아니라, 여러 번 옮겨 다니며 ‘어차피 나는 낯선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의 긴장.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만 시선은 이미 다음 질문을 찾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친절을 받으면 더 불편해한다. 친절이 빚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우진은 첫날부터 말을 걸었다. 커피, 점심, “잡담 담당” 같은 농담. 우진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밝고, 들뜨고, 가끔은 너무 들떠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사람.
나는 우진이 지안을 좋아한다는 걸 빠르게 알아챘다.
우진은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숨길 줄 몰랐다. “티 내며 흔들리는” 사람 특유의 리듬이 있다. 다정한 말이 먼저 나오고, 조금 늦게 불안이 나온다. 그 불안이 다시 농담으로 포장된다.
우진이 싫거나 불편한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우진 같은 사람이 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진의 다정함이 누군가에게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을 빚처럼 받았다가, 갚지 못해 도망친 적이 있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여름으로 가는 동안 지안은 점점 팀에 적응했다. 회의에서 발언도 늘었고, 슬랙에 웃는 이모지도 붙였다.
그런데 나는 동시에 다른 것도 봤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지안의 어깨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 말 끝이 얇아지는 것, “괜찮아요”가 빨라지는 것.
사람들은 보통 “괜찮아요?”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질문이 때때로 잔인하다고 느낀다. “괜찮아요?”는 대답을 요구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대부분의 대답은 한 가지다. 괜찮다고 해야 한다. 그
래서 나는 질문을 바꿔왔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지안이 노트북을 닫으며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큰 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숨이 조금 길어졌을 뿐인데,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지안님, 잠깐 괜찮아요?”
지안은 잠깐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우진은 바로 옆에 있었지만, 모르는 척 슬랙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우진도 느낀다. 우진은 느끼면서도 모르는 척한다. 그게 그 사람의 방식이다.
회의실 구석에서 나는 지안에게 말했다.
“오늘 회의에서 결정권이 애매했어요. 지안님 의견이 맞는데도, 한 번 더 설명해야 했고.”
지안은 “제가 아직…”이라며 말을 흐렸다.
“아니요. 실력 문제는 아니었어요. 역할 정의가 애매해서 그래요.
다음부터는 제가 먼저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지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닌 애매한 웃음. 그 웃음이 ‘나는 지금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나는 더 확실한 구조를 만들었다. 지안이 회의에서 말해야 할 지점, 자료를 공유할 타이밍, 외부 커뮤니케이션에서 지켜야 할 선. 그건 업무였지만, 사실은 사람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지안이 “감사해요”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감사가 빚이 되지 않게 하려고.
우진은 여전히 지안에게 커피를 묻고, 점심을 정하고, 농담을 던졌다. 지안은 웃어주기도 했지만, 웃음이 자주 반 박자 늦었다. 그 반 박자가 무엇인지 나는 대충 짐작했다.
부담일 수도 있고, 경계일 수도 있고, 혹은 지안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9월 초, 대형 클라이언트 제안서 마감이 하루 당겨졌다.
그 순간부터 회사는 전쟁 상태가 됐다. 회의실은 전쟁실이 됐다.
화이트보드에는 할 일 목록이 빽빽하게 적혔고, 전기포트는 쉬지 않고 끓었다. 종이컵은 쌓이고, 컵라면 냄새가 카펫에 배었다.
우진은 이런 날에 빛났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같은 농담을 던지며 사람들 숨을 돌렸다. 나는 우진이 고맙기도 하고—한편으로는 걱정됐다. 우진은 분위기를 살리지만, 분위기 속에서 제일 먼저 다치는 것도 우진이다.
일이 각자에게 쪼개졌다. 나는 전체 구조와 논리를 잡았고, 지안은 고객 니즈와 제안 포인트를 정리했다. 우진은 문장과 디자인 흐름을 다듬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말수가 줄었다. 새벽 1시쯤, 지안이 잠깐 복도로 나갔다. 물 마시러 간 걸 수도 있고, 화장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안의 걸음이 조금 빨랐던 걸 봤다. 숨이 막히는 사람의 걸음.
나는 따라 나갔다. ‘배려’라기보다 ‘업무 리스크 관리’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에게 설명을 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마음으로 움직이는지 인정해야 하니까.
복도 끝, 창문 앞에서 지안이 서 있었다. 도시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됐다. 지안은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숨을 고르는 모습이, 자기가 들키지 않게 애쓰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지안님.”
지안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
“아, 도윤님… 그냥… 잠깐…”
나는 “괜찮아요?”를 묻지 않았다. 대신 현실적인 말부터 꺼냈다.
“지금 제안서에서 ‘왜 우리냐’가 흔들려요. 지안님 정리한 니즈는 정확한데, 그걸 말로 꿰는 사람이 필요해요. 지안님 지금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말해주면 돼요. 완벽한 문장 말고.”
지안은 잠깐 나를 보더니, 오히려 더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제가 말하면, 이상할까 봐…”
그 말이 핵심이었다.
지안이 무서워하는 건 “틀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해 보이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방식이, 능력으로만 고정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늘 자기검열을 한다.
검열이 길어지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우리는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전기포트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종이컵 두 개에 나눴다.
종이컵은 이상하게도 ‘말을 덜 부담스럽게 하는 물건’이 된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눈을 맞추지 않아도 되니까.
새벽 3시, 자동등이 한 번 꺼졌다가 켜졌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지안의 얼굴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지안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저 사실… 이런 거 잘하는 척만 해요.”
지안이 말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다들 똑똑하고, 저는… 따라가는 느낌이라서요. 근데 따라간다고 하면, 바로….”
지안은 말을 삼켰다. “바로 뭐가 되죠?”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질문을 더 작게 했다.
“지안님이 ‘잘한다’는 기준은 뭐예요?”
지안이 잠깐 멈췄다.
“실수 안 하는 거요. 빈틈 안 보이는 거.”
“그 기준이면, 사람은 다 불합격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안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그게 웃음인지, 숨을 놓는 건지 애매했지만, 나는 그 애매함이 좋았다. 애매함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니까.
그때 우진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쿠, 저기 분위기 뭐예요. 둘이만 무슨 비밀 얘기해요? 나도 껴줘요.”
목소리가 컸다. 우진은 웃고 있었지만, 웃음이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 웃음 뒤에 있는 감정을 나는 알 것 같았다. 질투. 배제감.
지안이 흠칫하며 종이컵에서 손을 뗐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냥… 지안님 좀 힘들어 보여서요.”
우진이 더 큰 농담을 덧붙였다.
“나도요. 나도 힘든 사람 위로 엄청 잘합니다. 공식 잡담 담당이니까.”
나는 우진을 타박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우진이 더 크게 상처 받을 걸 알았다.
우진은 늘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하는데, 그 욕망이 무너질 때 제일 거칠어진다.
지안이 말했다.
“괜찮아요, 우진님. 저 진짜 괜찮아요.”
그 말은 우진에게 향한 말 같았지만, 사실은 지안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괜찮아야 해.’ 회사에서는 늘 그래야 하니까. 우진은 그 말에 상처 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진이 돌아가면서 던진 말도, 사실은 자기에게 하는 말이었다.
“오케이. 괜찮으면 다행이죠. 그럼 일이나 합시다. 우리 다 같이 괜찮아져야 하니까.”
우진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회의실은 다시 일로 채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지안이 ‘괜찮아요’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졌다. “괜찮아요”는 너무 많은 걸 덮어버리니까.
새벽 5시쯤, 제안서는 거의 완성됐다. 모두가 멍해진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안이 하품을 참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너무…”
나는 그 말을 끊지 않고 이어받았다.
“사람이잖아요. 그럴 수 있죠.”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우진을 봤다. 우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우진은 내가 지안을 특별히 대하는 것처럼 받아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대하고 싶지 않았다. 특별해지는 순간부터 관계는 위험해지니까.
그런데도—
그 새벽이 지나고 나서, 내 체크리스트에는 빈칸이 하나 생겼다.
‘지안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지안이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그 무서움을 덜어주려면 구조 말고 무엇이 필요한가?’
그 빈칸은 업무로 채워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이후로 팀은 한동안 그 밤의 후유증을 앓았다. 점심을 먹어도 멍했고, 회의에서 말이 짧아졌다.
지안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눈 밑이 오래 가라앉지 않았다. 우진은 더 밝아졌다. 너무 밝아서 불안했다. 사람이 더 밝아지는 건 무너질 때의 전조였다.
어느 날 퇴근 직전, 우진이 내 자리로 와서 말했다.
“도윤님, 요즘 지안님… 괜찮아 보여요?”
우진은 “괜찮아 보여요”라는 말을 했지만, 눈은 ‘나랑은 괜찮은가요?’를 묻고 있었다. 나는 우진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지안님, 일이 많아서 피곤한 건 맞아요. 근데… 도움 필요하면 얘기할 타입이에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도움 필요하면 얘기할 타입”이라는 건 내가 바라는 지안의 모습이기도 했다. 지안은 아직 말하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우진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서, 회사는 연말 회식과 평가로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관계가 시작되기 좋은 계절은 사실 겨울이 아니라 봄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은 모든 걸 정리하는 계절이다. 정리되는 것들 속에서 사람 마음도 정리된다.
연말 어느 날, 지안이 내게 슬랙을 보냈다.
[도윤님,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무슨 이슈지’라고 생각하며 회의실로 갔다. 지안은 문을 닫고 나서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지안이 조용히 말했다.
“저… 요즘 제가 왜 이렇게 힘든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이 나를 조금 흔들었다.
지안이 누군가에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지안에게 꽤 큰 용기였다. 그리고 그 용기가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나를 더 조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잘못하면 이 용기를 다시 접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했다.
“지안님은요, 힘들면 보통 어떻게 하세요?”
지안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 더 잘하려고 해요.”
그 대답이 너무 지안 같아서, 나는 웃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더 잘하기’ 말고, ‘그냥 말하기’만 해봐요. 뭐가 제일 무서운지.”
지안은 손끝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제 생활이 통째로 흔들렸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더…”
지안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들었다. ‘더’ 뒤에 붙는 말들은 너무 뻔해서. 더 조심하게 되고, 더 통제하려 하고, 더 외로워지고, 결국 더 지치게 된다.
그날 회의실을 나서며, 나는 내 안의 규칙 하나가 깨지는 걸 느꼈다.
나는 늘 ‘회사에서는 감정을 배제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감정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며칠 뒤, 퇴근 시간이 비슷하게 겹쳤다. 지안이 먼저 말했다.
“도윤님, 오늘… 조금 걸을래요?”
회사 건물을 나오면 바로 지하철역이 있지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겨울 공기가 차가웠다.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급하게 들어가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천천히 걸었다. 그 천천함이 나를 더 조심하게 만들었다. 서두르면 깨질 것 같았다.
지안이 말했다.
“그날… 밤샘하던 날 있잖아요. 그때 도윤님이 해준 말, 계속 생각났어요.”
나는 “어떤 말이요?”라고 되물었다.
지안이 잠깐 웃었다.
“사람이잖아요. 그럴 수 있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가 지안에게 준 건 조언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그 허락이 지안을 조금 숨 쉬게 했다면—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떠올랐다. 우진의 얼굴. 우진이 던지던 큰 농담들. 우진의 흔들리는 눈빛. 나는 누구의 마음도 함부로 밟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나는 지안에게 확실한 말을 하지 않았다. 고백도, 약속도, 정의도 하지 않았다. 대신 더 작은 말을 했다.
“지안님이 편한 속도로 가요. 저는… 그 속도 맞출게요.”
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작’인지 ‘일시적 위로’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알았다. 내 체크리스트의 빈칸이 조금 채워지고 있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그 빈칸은 일로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우진에게는,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할 수 있을까.
겨울밤의 숨이 흰 연기처럼 퍼졌다가 사라졌다.
나는 지안 옆에서 그 연기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감정을 배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견디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이름 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