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지만 -1-

미완의 농담

by 진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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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에서 “분위기 담당”으로 산다.

회의가 얼어붙으면 누가 먼저 웃기라도 해야 하고, 점심 메뉴 앞에서 모두가 “아무거나”를 외칠 때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가 자주 그 역할을 맡는다.


그렇게 살면 편하다. 사람들 기억 속에 ‘괜찮은 사람’으로 남는다. 적어도 ‘불편한 사람’으로는 남지 않는다.

3월, 강지안이 우리 팀에 들어온 날도 나는 평소처럼 했다.


입사 첫날의 공기가 늘 그렇듯 낯설고 민감했다. 새 사람은 긴장하고, 팀은 환영하는 척하면서도 ‘일은 할 수 있나’를 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심스러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지안님 커피 드세요? 여기 근처에 괜찮은 데 있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너무 빠른가 싶어서 뒤늦게 “괜찮은 데” 같은 애매한 말을 붙였다.


강지안은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표정이… 정확히 말하면 웃는 표정이 아닌데도 예의상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감사해요. 커피 좋아해요.”

짧은 대답. 그런데 그 짧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사람을 잘 읽는 척하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날부터 내 눈은 계속 강지안 쪽으로 가 있었다.

그때 옆에서 파일을 정리하던 서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지안님, 온보딩 자료는 드라이브에 정리해뒀어요. 필요하면 말씀 주세요.”

서도윤은 늘 저런 식이다.

말이 단정하고, 친절이 과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고정된 사람처럼 안정적이다.

나는 그런 사람 옆에 서면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가진 장점이 ‘말’뿐인 것 같아서.

강지안이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괜히 더 크게 웃었다.

“질문 있으면 저한테도 막 던지세요. 저는 팀의 공식 잡담 담당이라.”

강지안이 그제야 진짜로 한 번 웃었다.

아주 작게. 딱 한 번. 그 한 번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인간이 이렇게 단순한가 싶어서 웃기면서도,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의 회사는 에어컨 냄새가 사람 피부에 붙는다. 모니터 속 숫자들은 계절을 모르고, 사람만 계절을 안다. 강지안은 점점 팀에 익숙해졌다.

회의에서 말을 더 했고, 슬랙에 이모지도 붙였다. ‘ㅎㅎ’ 같은 문자도 조금 더 자주 썼다.


나는 티를 냈다. 아주 티가 났다. 나의 티는 대부분 농담의 형태였다. 진심을 바로 말하면 위험하니까, 농담으로 한 번 감싸서 던진다. 상대가 받으면 진심이 되고, 안 받으면 “아니에요~ 농담이죠”로 빠져나올 수 있다. 비겁하지만 안전하다.

점심시간, 강지안이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하면 나는 과장되게 놀라며 말했다.

“지안님, 회사에서 제일 위험한 말이 그거예요. ‘아무거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오늘은 제가 책임질게요. 쌀국수 어때요?”

강지안이 웃었다.

“좋아요. 쌀국수요.”

그 웃음이 내 선택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자주 메뉴를 정했고, 더 자주 커피를 물었고, 더 자주 “퇴근길 조심히” 같은 말을 던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던지는 말들이 강지안에게 ‘고마운 배려’인지 ‘부담스러운 관심’인지 분간이 안 됐다.


강지안이 바쁜 날, 내가 “커피?” 하고 물으면 “오늘은 좀…” 하며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 미안함이 나를 미치게 했다. 미안해하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면 나쁜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물러서면, 관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어진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늘 그렇듯.

“아~ 오케이. 원래 제가 회사에 커피를 너무 권해요. 나중에 건강검진에서 다 제 탓이라 해도 돼요.”

웃고 돌아서면서 속으로는 ‘내가 지금 부담인가’ 같은 질문을 천 번쯤 했다. 나는 티 내며 흔들리는 타입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밝아지고, 그 밝아진 내가 싫어질까 봐 다시 어두워진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나는 스스로 증명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 서도윤은 이상하게도 일정한 거리를 지키면서도 강지안과 자주 붙어있었다. 강지안에게 친절하긴 한데, 내가 하는 쓸데없는 말들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같은 말을 했다. 깔끔한 문장. 감정이 섞이지 않은 친절. 근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감정 없는 친절은 ‘관계’로 확장될 여지가 없는데도, 사람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는데, 강지안이 노트북을 닫으며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옆에 있었는데도 그 한숨을 놓쳤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놓쳤는지도 모른다.


서도윤은 그걸 잡았다.

“지안님, 잠깐 괜찮아요?”

그 한 문장이 내 속을 긁었다. ‘괜찮아요?’를 나는 언제 그렇게 말해봤지. 내가 하는 건 대부분 “괜찮죠?” “괜찮을 거예요” 같은, 상대의 대답을 이미 정해둔 말들이었다.

강지안과 서도윤이 회의실 구석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슬랙을 확인하는 척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강지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회의 힘들었죠? 저녁이라도 맛있는 거 먹고 푹 쉬세요]

보내자마자 후회했다. 너무 티 났나? 부담이면 어쩌지? 답장이 늦어질수록 내 머릿속에서 온갖 가능성이 뛰어다녔다. 강지안은 한 시간쯤 지나서 답했다.

[네 ㅎㅎ 감사합니다. 우진님도요]

‘ㅎㅎ’ 두 개. 나는 그 두 개를 마치 암호처럼 해석했다. 두 개면 괜찮은 건가, 하나면 거리 두는 건가, 세 개면… 나는 정말로 못났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모두가 그냥 회사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늘 일이 먼저다. 그날도 그랬다.

9월 초, 대형 클라이언트 제안서 마감이 하루 당겨졌다. 팀장 얼굴이 순식간에 회색이 됐다.

“오늘 밤샘 각오하세요. 내일까지 제출합니다.”

회의실이 전쟁실이 됐다. 화이트보드에 할 일이 적히고, 노트북이 켜지고, 누군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에너지바를 사왔다. 전기포트가 켜질 때마다 ‘칙’ 하고 소리가 났고, 종이컵이 차곡차곡 쌓였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이런 날에 내가 빛난다. 사람들이 예민해질 때 농담 하나로 숨을 돌려주는 역할.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자, 여러분. 오늘 밤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제안서 끝내기,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기.”

누가 피식 웃었다. 강지안도 웃었다. 그 웃음 덕분에 나는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이 갈라졌다. 서도윤은 구조를 정리하고, 강지안은 고객 니즈를 분석하고, 나는 문장과 흐름을 다듬었다. 같은 회의실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섬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자꾸 강지안 쪽을 봤다. 강지안이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이 점점 건조해지는 걸 봤다.

입술이 얇게 말리는 것도. 그 표정은 내 농담으로 풀리지 않았다.


새벽 1시쯤, 강지안이 잠깐 복도에 나갔다.

나는 따라 나가려다 멈췄다. ‘너 지금 너무 티 나’라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렸다. 대신 회의실에 남아 컵라면을 들고 서성거렸다.

그때 서도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지안이 나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 말이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닌 것 같았는데, 나는 그게 나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너는 여기 있어.’ 같은. 내 자리에 고정된 사람처럼.

나는 농담에 가려진 척 그를 떠보고 싶었다. “도윤님, 데이트신청하러 따라가시나요?” 같은 걸. 하지만 입이 안 열렸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새벽 3시. 회의실 자동등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그 짧은 어둠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어둠이 내려앉고 다시 빛이 켜질 때—회의실 한쪽 구석에서 서도윤과 강지안이 마주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서도윤이 종이컵을 하나 강지안에게 밀어주고 있었다. 따뜻한 물인지, 커피인지 모르겠다. 강지안은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말이 길어 보였다.

서도윤은 끼어들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마치 강지안의 말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나는 그 장면을 보는 동안 숨 쉬는 법을 잊었다. 내가 강지안에게 해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점심, 커피, 농담, 메시지.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는 단 한 번이라도 강지안의 “말”을 저렇게 길게 들어준 적이 있었나?

그때 강지안이 웃었다.

아주 작게, 입술로만. 그리고 서도윤도—정확히는 서도윤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서도윤이 웃는 걸 나는 거의 처음 봤다.

그 웃음은 내 농담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을 이해했을 때 나오는, 그 종류의 웃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무너지는 대신, 농담을 던졌다. 내 방식대로.

“어이쿠, 저기 분위기 뭐예요. 둘이만 무슨 비밀 얘기해요? 나도 껴줘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너무 컸다. 회의실에 있던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강지안이 흠칫하며 컵에서 손을 떼고 나를 봤다.

서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싫다’가 아니라 ‘조심해’에 가까운 표정. 그게 더 짜증 났다. 나를 나쁜 사람 만들지 않으면서도 내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같아서.

“그냥… 지안님 좀 힘들어 보여서요.” 서도윤이 말했다.

“어어, 나도요. 나도 힘든 사람 위로 엄청 잘합니다. 공식 잡담 담당이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는 웃고 있는데, 웃음이 입 안쪽에서 쓴맛이 났다.

강지안은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괜찮아요, 우진님. 저 진짜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 말이 칼처럼 느껴졌다. 강지안이 나를 밀어내는 말인지, 상황을 정리하는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나는 ‘괜찮아요’에 상처 받았다. 그리고 상처 받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들켰다. 제일 못난 방식으로.

“오케이. 괜찮으면 다행이죠. 그럼 일이나 합시다. 우리 다 같이 괜찮아져야 하니까.”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 속 문장들이 갑자기 안 보였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마음은 계속 방금 그 구석으로 걸어가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5시쯤, 제안서는 거의 완성됐다. 모두가 잠깐씩 멍해져 있었다.

강지안이 하품을 참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너무…”

“사람이잖아요.” 서도윤이 말했다. “그럴 수 있죠.”

그 한 문장이 내 머리를 때렸다. 사람이잖아요. 그 말은 ‘괜찮아요’보다 더 따뜻했다.

강지안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리는 걸 나는 봤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아, 이건 이미 시작됐구나. 나는 시작도 못 했구나.


프로젝트 이후로 관계는 조금씩 바뀌었다. 바뀌는 건 늘 아주 천천히 일어나서,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다.

서도윤과 강지안은 점심을 자주 같이 먹었다.

업무상이라고 해도, 그 빈도가 늘었다. 나도 같이 끼면 되지 않냐고? 물론 그럴 수 있다.

나는 실제로 자주 끼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티가 났다.


강지안이 커피를 사러 가면 “나도!” 하고 따라나갔다. 서도윤도 같이 가면 나는 일부러 더 밝게 말했다.

“와, 오늘 커피 삼각형 완성. 이게 회사 로맨스의 시작인가요?”

사람들이 웃었다. 강지안도 웃었다. 근데 강지안의 웃음은 늘 반 박자 늦게 나왔다. 그 늦음이 나를 더 흔들었다. ‘싫어서 늦는 건가? 아니면 내가 진심인 걸 알아서 조심하는 건가?’ 나는 그 차이를 알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흔들렸다. 어느 날은 강지안에게 진지하게 말할 뻔했다.

퇴근 엘리베이터에서 둘만 남았을 때, 내 목까지 말이 올라왔다.

‘나 사실…’

그때 강지안의 폰이 울렸다. 강지안이 화면을 보더니 “아, 네” 하고 받았다.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는데, 강지안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지는 걸 들었다. 그 부드러움이 나를 얼게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더 세게 눌렀다. 숫자가 내려가는 것처럼, 내 마음도 내려갔다.


연말이 다가왔다. 회사 로비에 트리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회식 약속을 잡았다. 나는 결국 강지안에게 말했다. 이번엔 농담 말고, 반쯤은 진짜로.

“지안님, 올해 고생 많았죠. 우리… 연말에 술 한잔 할래요? 그냥, 얘기 좀… 하게.”

강지안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아주 짧은 망설임. 그리고 말했다.

“좋아요. 근데… 우진님, 저 요즘 좀 정신이 없어서요. 날짜는… 나중에 잡아도 될까요?”

나중에.

나는 나중에라는 말을 믿지 못했다. 나중에는 늘 오지 않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끝날 것 같았다. 나는 웃었다. 또 웃었다. 내 마지막 무기처럼.

“그럼요. 나중에. 우리 회사에서 제일 많이 쓰는 말이잖아요. 나중에 하자. 나중에 보자. 나중에… 잘되자.”

강지안이 “ㅎㅎ” 하고 웃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한 해를 되감았다.

벚꽃, 에어컨 냄새, 새벽 3시 자동등, 종이컵. 나는 내내 웃고 있었고, 내내 흔들리고 있었다. 티를 내면서도, 진심은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강지안이 서도윤에게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새벽 3시, 나는 본 걸 봤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웃었다. 농담으로 살았다. 농담으로 사랑을 던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강지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고생했어요. 집 잘 가요]

보내고 나서 바로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답이 오면 흔들릴 것 같아서. 답이 안 와도 흔들릴 것 같아서.

흔들리는 걸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강지안을 좋아한다는 증거처럼 느껴져서—나는 또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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