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영화

관계

by 조은주

드라마를 선택할 때 예고편만 봐도 느낌이 오는 드라마가 있다. 물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들의 노력과 연기력,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 드라마를 바로 알아보게 된다.

드라마를 찾아보거나 시간을 챙기며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왠지 꽂히는 드라마는 뭐랄까.......

내 인생에 진한 감동과 조언을 주는 느낌이랄까.......


요즘 '우리영화'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내용이 다이내믹하거나 전개가 파격적이지 않지만 볼 때마다 잔잔한 무언가가 가슴을 울린다.

젊은 시한부 여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꿈을 실현한다. 삶을 쉽게 놓지 않으려는 여주인공의 연기가 애잔하면서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 준다. 드라마 안에서 영화를 찍는 스텝들이 여주인공이 실제 시한부인지 모르는 내용이 나온다. 모든 스텝들이 시한부에게 역할을 주었다고 영화 찍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열정에 동화되어 스텝들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여주인공이 다시 돌아와 준 그들에게 감동받아 울먹이며 하는 말이 있다.

"나 어떡해요. 너무 살고 싶어요."라는 대사이다. 시한부인 사람에게는 금기어와 같은 말이다.

드라마에서 죽음을 앞둔 인간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뻔한 내용이기는 하나, 그 한마디의 대사가 가슴에 너무 다가왔다. 살고자 하는 여주인공의 절실함이 느껴졌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간적인 향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시한부 혼자의 연민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얻어지는 긍정적 시너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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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혼자인 사람도 혼자서 잘해 낼 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모순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관계하고 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고 거리를 지나는 순간 사람들을 마주친다. 산책을 하다가 푸르른 나무와 꽃들이 나의 위안이 될 수 있고, 동네 골목의 유기묘나 반려견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직장에서 으르렁거리는 상사가, 나를 흉보는 동료가 나를 살아지게 하는 동력일 수도 있다. 매일 보는 무심한 가족도 나를 숨 쉬게 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관계에 의해 살아지는 귀중한 시간을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자연의 순환고리 안에서 보잘것없는 우리는 관계를 통해 싹을 틔우고 생명을 꽃피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깨닫지 못한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준비하고 살아갈 수 있다. (안도현 '관계' : 출판사 계수나무 서평 인용)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시한부로 죽어야 하지만 사람에 의해 살고 싶다는 말을 던지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관계들을 너무 경시하며 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이나 택배 아저씨에게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인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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