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에게
시어머니는 이사를 할 때마다 점검(?)을 위해 우리 집에 와 보시곤 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무작정 오시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이제는 오실 수 없기에 생전에 먼저 초대하지 못했던 죄스런 마음으로 남편에게 어머님 산소에 가서 이사했다고 인사드리자고 했다.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더운 여름날 남편과 나는 시부모님 산소에 갔다. 드넓은 공동묘지는 더위로 인해 인기척조차 없었다. 시부모님은 아쉽게도 합장되어 계시지 않고 따로 묻혀 계신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시아버님은 아랫동네에 시어머님은 윗동네에 계신다. 어머님께 먼저 인사드리러 윗동네를 올라갔는데 그 많은 묘지중에 한 묘지 앞에 중년남성이 서 있었다. 날씨가 뜨거워서인지 차양막을 치고 묘지 앞에서 오롯이 서서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분도 아무도 없는 넓은 묘지에 혼자 있던 터라 우리가 가자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애도에 집중했다. 우리도 해가 뜨거워 장우산을 쓰고 어머니의 묘를 돌봐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내려왔다.
아랫동네에 계시는 아버님께 내려오자 이번에도 많은 묘지중 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30대의 젊은 남성이 보였다. 기온이 40도를 육박할 정도의 날씨에 뙤약볕이 그대로 내리쬐고 있었다. 그런데도 간단히 서서 애도하지 않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고인과 술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장우산을 또 펼쳐 들고 아버님 묘를 돌봐드리고 인사를 드렸다. 더위로 남편은 땀목욕을 해야 했다.
남편은 더운 여름 부모님의 산소를 돌봐드린 것에 안심을 하였고, 나는 나대로 시부모님께 우리의 안부를 전해드린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더위에 지쳐 차에 몸을 싣고 에어컨을 트니 이만한 피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상쾌했다. 큰 숙제를 해결한 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제사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30대 젊은 남자는 그 사이 애도를 끝내고 돗자리를 둘러매고 걸어가고 있었다. 공동묘지가 큰 터라 걸어가는 것만 해도 힘든 상황이었다.
때마침 중년의 남성도 윗동네에서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도 없이 이 더운 8월에 사람도 버스도 잘 오지 않는 산소를 찾아온 것이다. 무슨 사연이길래?
나는 더운 날씨에 그 사람들이 안쓰러워 남편에게 차에 태워주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 날씨에 버스를 타고 힘들게 오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혼자서 추모하고픈 마음일 거라며 방해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도, 그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억하고 현세를 살아가는 힘을 얻고자 나름의 소통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른 공동묘지에 네 사람은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고인들을 추모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우리의 세상에서 보면 고인들은 떠나고 우리는 남지만, 고인들의 자리에서 보면 아마도 우리가 떠나고 고인들은 남는 형상일 것이다. 두고 오는 네 사람의 심정은 안타까움이지만, 남아있는 네 사람의 심정은 그리움일 것이다. 두 감정이 교차된 우리는 살아내야 하는 각자의 소임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