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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Sep 13. 2023

수필

가을저녁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운데 어쩌다 스치는 바람 끝에선 청량함이 느껴진다. 여름의 바람과 다른 이 느낌은 지속적인 것은 아니다. 찰나의 순간 앞머리에 가려진 이마 속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 청량함을 기대하며 바람을 향해 이마를 내어줘도, 장작불을 타고 불어온 듯한  뜨거움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바람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다시 내 이마를, 내 옷깃을, 내 손가락 사이를 지나다니며 싱그럽게 아온다.

사람들은 가을을 말할 , 높아진 하늘과 그 하늘의 청명함, 익어가는 과일들, 고개 숙인 벼를 말한다.

눈에 보이는 가을은 풍요로움이 넘치고, 들판에는 굶는 동물이 없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런 이유로도 을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계절이다.


하지만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깜깜한 밤에 있다. 가을밤에는 낮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 주는 고요함 속에어디서 낮잠 늘어지게 자고 나온 귀뚜라미도, 온갖 풀벌레들 장가를 연주해 주듯 소리를 내며 존재를 드러낸다.

가을의  밤하늘 쌀쌀함의 온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진한 푸른색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단순히 파란 하늘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둠 속에 있지만 저 어둡다고만 한다면 나는 쩐지 서운하다. 얇게  흰 구름이라도 낀 날은 그 신비로움에 이 아프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게 다.

그 위에 올라앉은 달, 가을 밤하늘 좀 보라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늘을 더 밝게 비춘다.


가을밤을 추억하는 것도 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는 추석명절 밤에 마을 축제가 열렸다. 축제에 가기 위해 어린 발걸음으로 삼십 분 이상을 걸어야 했지만 그저 신이 났다.  버스 다니지 않던 작은 시골마을에서 매일 아침 학교에 가던 그 길을, 어린 내 눈에는 서울과도 같던 그곳을 향해 발걸음도 가볍게  걷고 또 걸었다. 불빛은 필요하지 않았다. 맑은 하늘과 밝은 달이 우리들의 길을 비춰 주었다. 이는 어른들의 손을 잡고, 마을과 마을에서 두가 를 즐기러 갔다. 명절이라고 시골집을 찾아 내려온 자녀들까지 함께하니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곳에는 노래가 있었고, 웃음이 넘쳐났다.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소소한 즐거움 있었다. 가을밤에 볼 수 있는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별자리도 아보고, 축제의 뒷 이야기를 하며 모두가 재잘재잘 흥이 멈추지 않고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었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지금도 추석명절이 되면 같은 축제가 열린다.

이번 명절에는 우리 아이들과 시골길을 함께 걸으며, 가을밤의 정취도 느끼고 오랜만에 축제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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