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인간 관계에 대한 고찰

by 서본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종강과 더불어 찾아온 공백은 나의 일상에 무료함을 더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중 학원 조교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나의 업무는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의 숙제와 시험지를 채점하고, 출결을 관리하고, 시험을 감독하는 것 등의 일이었다. 나는 새로 시작한 일인 만큼 같이 일하던 다른 조교에게 일을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 그가 알려주는 일 처리 방식을 익히며, 학원의 체계를 모르던 나로서는 사소한 행동조차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곤 했다.


채점하는 방식부터 시험을 감독하는 방법까지 학원의 규정은 규격화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채점을 할 때는 특정한 펜을 써서 특정한 표시방법대로 표기를 해야 했고 숙제와 시험은 채점방식이 달랐다. 시험 감독을 할 때는 특정 시간마다 여러 번의 재시험을 봐야 했고, 재시험을 탈락한 후 그다음 재시험을 볼 때는 아이들에게 부여하는 과제나 관리방식이 달라졌다.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많았지만, 채점방식은 금세 체화되었고 그 외에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점차 숙지하도록 했다.


정해진 규칙과는 별개로 학원에서의 상황은 매우 유동적으로 흘러갔다. 쉬는 시간과 수업 종료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강의실에서의 소리를 들으며 눈치껏 수업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했다. 따라서 주어진 업무를 다 끝낸 후에도 마음 편히 쉬기보다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종종 걸려오는 학부모의 전화나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수 또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변수였다.


이 주째 학원 조교로 근무하던 중, 나머지 공부를 하던 학생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 업무를 안내받을 때 학부모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언질을 받은 것이 기억이 나, 경험이 없어 당황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학생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되도록 빨리 끝내 달라는 말을 듣고 있던 찰나,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조교가 다가오더니 전화기를 탁 채갔다. 당황스럽고 무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태연한 척 강의실로 넘어가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어느새 전화를 마친 그가 강의실 밖으로 나를 불러냈다.


학원에도 체계와 규칙이라는 게 있는데, 선생님 마음대로 하시면 어떡하냐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학부모로부터 출결 관련한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새로 온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넘겨야 하고, 시험지가 부족할 때는 시험지 배부 시 한 장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적을 받았을 당시에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 나는 학부모와 통화할 시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시험지 출력은 그 조교가 해 놓은 것이기에 부족한 지 몰랐을 뿐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시험지를 한 장 남기라는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


상대가 오해를 했구나 싶었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게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이외에도 모든 규칙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해 그를 답답하게 했나,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명하자니 변명하는 것 같아 구차하게 느껴져 다음부터 잘 숙지하고 행동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이외에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조금 지나 그가 다가와 아까의 대화 때문에 기분이 상했냐고 물었다. 원래 사회생활이란 게 지적도 받는 거고 이런 건 마음에 담아두면 안 된다고 어렴풋이 짐작하며 괜찮다고 답하고 퇴근했다.


다음번 출근을 하기 전에, 나는 그가 지적한 내용을 포함해 잊지 말아야 할 점들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지적받은 것은 사적인 감정으로 엮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태도는 평소처럼 일은 평소보다 잘하자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지난 일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였다. 밝게 건네는 인사와 유한 말투에도 그는 툭툭 쏘는 대답을 건넸다. 혼자만의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일처리 방식이 달라진 것을 보고 적대적으로 변한 그의 태도를 확신했다. 아주 사소한 친절조차 아까운 듯한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나이가 많다고 성숙한 것은 아니구나' 이상적인 어른에 대한 실망 가까운 것을 느꼈고 어쩌면 그의 입장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를 이해해보려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 약 세 달이 되었다. 나는 당분간 아무런 일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전에는 왜 그토록 돈이 벌고 싶었는지. 그동안 했던 자잘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항상 '사람'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했는데, 사실 그들의 존재를 탓하고 싶진 않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어떠한 근무환경을 선택하여 들어간 것은 나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판단력이 흐려졌던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밖에.


스스로의 능력치를 키우는 것은 내가 속할 수 있는 환경(근무환경을 제외하고도)과 그에 속한 사람들을 바꾸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성품과 능력, 배경, 인맥 등 모든 것이 내가 속한 곳에 좌우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능력이 출중해도 이를 써먹을 수 있는 곳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 또한 나의 일이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도 운이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단순노동엔 적합하지 않은 성향이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업무를 선호한다는 것도 말이다.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도 돌아보았다. 나는 '상대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적절한 웃음과 대화주제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때문인지 주변인들은 주로 나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해주곤 한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상대에게 굳이 잘 보이려 하지 않는 태도와 불필요한 웃음, 잡담을 삼가는 것은 이러한 거리 유지를 도울 것이다. 또한 상하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저자세로 상대를 대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참거나 회피하기보다 예의 있고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