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을 보고
24살의 날들은 예년보다 여유롭되 혼란스럽다.
내가 언젠가 바랐던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어쩐지 현재 서있는 곳도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시기다.
하루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흐르는 시간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 해가 지날수록, 무언가를 어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허무함이 드는 것이다.
20대가 되며 내 주변의 '친구'들은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오랜 수험 생활 또는 취업 준비 기간을 겪으며 자의와 타의로 우리는 소리 없이 멀어져 갔고, 이제는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보이지 않는 서로의 기분과 상황을 고민하다가도, 원래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개인주의적인 삶이 차라리 편하다며 지레 연락을 포기하곤 했다.
요즈음 '혼자'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필요한 접촉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갈등들을 원천차단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나 또한 예전과 다르게,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저 홀로 존재할 때 가장 평온할 때가 있다.
비혼주의와 같이 배우자를 곁에 두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터넷 상의 댓글을 보다 보면 가치관과 성향이 조금만 어긋나도 관계를 정리하는 경향의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에게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와,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경제력 그뿐일까. 우리 마음에 조금의 불편이라도 끼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그저 치워버리면 되는 것들처럼 치부되곤 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경향성은 자칫하면 혐오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 SNS와 커뮤니티, 뉴스 기사들의 수많은 댓글들에서 우리는 많은 이들의 의견들을 마주한다. 그중 보는 이들의 감정이 일체 고려되지 않은 어떤 여과 없는 표현들은, 가끔씩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실 '혐오'는 가장 어리석고도 모순 가득한 감정이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혐오들을 뱉고 있다. 노인혐오, 아동혐오, 여성혐오, 남성혐오, 동물혐오... 셀 수 없는 색안경과 쉽게도 내뱉는 조롱 섞인 말들 속에서, 내가 평가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다는 그 착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오류와 오만을 범하고 있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고,남들의 시선에 휩쓸려 상상하며, 그렇게 일반화된 허상에게 분노하는 모습들은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가.
우리가 내뱉는 혐오의 화살이 돌고 돌아 우리의 가족에게, 혹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은 남녀노소, 비장애인, 장애인, 다양한 동식물들이 섞여 살아가는 한 세상이다. 우리는 결코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다양한 범주의 고통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비교할 수는 없다. 언행을 통해 스스로의 품격을 드러낼지 결점을 내보일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확연한 고행이다. 특별히 힘든 일이 없어도, 그저 인간으로서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규칙적인 시간에 취침과 기상을 하며, 운동과 독서 등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우리의 꿈을 찾아 정진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실상은 밥 한번 차려먹기가 귀찮고, 깨어나보니 해가 중천이며, 책과 담쌓은 지는 몇 년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빌어먹을 꿈이 뭔지도 모르겠는 것이다.
가끔씩 나는 뼈저리게 외롭다. 또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되지 않고, 현재의 상황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씩 나는 몸살이 난다. 가만히만 있는데도 삭신이 쑤시고 정신이 흐려질 때가 있으며, 나를 제외한 주변의 청춘들은 묵묵하고도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 움츠려 들기도 한다.
24살은 어떤 나이일까? 각자 인생의 속도가 다르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서 스스로의 속도를 더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객관적 지표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속도는 느린 것인가? 빠른 것인가?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나의 적성과 흥미와 경제력과 가족과 사회와 눈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고려하며,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매일밤 고민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하고 읽기로 해놓고 미루고 미루던 책을 집어 들었다. 글도 써보고 여행도 해보고 그림도 그린다. 미련을 남기기 싫은 공부도 시작하려 한다.
자의든 타의든 개인으로 고립되어 가는(그것이 행복한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또 불명확한 미래에 끝없이 방황하고 있는, 청춘이라는 시기를 거치며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한 영화 속 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넌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공처럼 살아라. 그리고 절대 동심을 잃지 말아라. 그럼 갈 길이 보일 것이다. “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 알프스에 세머링이란 곳이 있는데, 비엔나와 베니스를 잇는 철도를 만들었습니다. 기차가 다니기도 전에 철도부터 만들었어요.
언젠가 기차가 들어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릴 때 난 무당벌레를 잡기 위해 애쓴 적이 있어. 결국 한 마리도 못 잡고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지. 깨어나 보니 몸 전체에 무당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어."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