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오른 손으로 따르세요.^^

by 홍승표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쓰는 술을 관리한 ‘사온서(司醞署)’가 있었습니다. 왕실에서 사용할 최고 품질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 별도의 관청을 두어 특별히 관리했던 것이지요. 좋은 술을 만드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에 사온서에서 술을 만들고, 그 술은 내의원에서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내의원에서 전한 술에 관한 이야기 중에 아래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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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오곡의 정기라 적당하게 마시고 그치면 참으로 좋은 약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들의 청을 굽어 쫓으십시오.”

가뭄이 들어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세종대왕에게 신하들이 건의한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몸이 아프거나 허약할 때 약으로 술을 마시거나, 약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에 관한 전설이나 떠도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술에 관한 한 자칭 내로라하는 ‘주당(酒黨)’이나 ‘주신(酒神)’ 또한 많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저 역시 술을 꽤 즐기는지라 꽤 알 것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별로 아는 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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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새참 심부름을 하면서 일찍 술맛을 알게 됐지요. 새참에는 흔히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곁들입니다. 그런데 술이 담긴 주전자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술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한 두 모금씩 맛을 보다 보니 점점 주량이 는 것이지요. 아무튼 술맛을 알고부터는 힘든 줄 모르고 심부름을 자청했습니다.


열 서너 살이 지나 농사일을 돕거나 땔나무를 할 때는 동네 형들이 주는 술을 어느 정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담배는 마주 앉아 피우는 것을 금했지만, 술은 한자리에서 함께 나누는 것에 관대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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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주도(酒道)를 배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해였다고 기억합니다. 할머니 제삿날, 아버지는 “사내 나이 열일곱이 됐으면 술을 좀 해도 되지”라고 하시며 음복(飮福)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짐짓 놀란 척했지만, 아버지도 제가 술을 마신다는 걸 알고 계셨을 겁니다. 고마운 일이었지요. 정말 고마운 것은 술도 음식이므로 가려서 마시되 주법(酒法)이 있다면서 여러 가지를 전수해 준 것입니다.


옛 선비들은 마을 정자에 모여 시 한 수와 노래 한 가락에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먼 산이나 강 자락을 바라보며 술과 함께 하는 풍류에는 정이 넘쳤지요.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술을 나누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한 순배가 돌아가면 자리를 떠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 술판이 점점 커지기도 했지요. 더러 한잔했으면 일어서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때면 술잔을 왼손으로 건넵니다. 인제 그만 가라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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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일이고 꽤 오래전이지만, 거지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철이나 폐휴지 등을 주어 얻은 수입으로 가끔 회식하는데, 왕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에게는 왼손으로 술을 따릅니다.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절대로 잔을 받지 않고 더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이 세계에서도 왼손 술잔의 의미를 아는 거지요.


술은 잘 마시면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량 자랑보다는 분위기에 맞게 처신하는 중요하지요. 술자리를 통해 의중을 떠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주법 스승이 아버지였기에 어느 술자리에서든 결례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지요. 아버지의 주도를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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