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입사했는데 퇴사했습니다

32살에 유학 가기 Part 1

by 살라망카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착실한 학생이었다.


초중고 12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교 4년 내내 학점, 인턴십, 최종적으로 대기업에 합격하기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고등학교 때 아빠의 투자 실패 이후 우리 가족은 집을 팔고 월세집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국내 조선 3사 중 한 곳에 입사했고, 23살에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큰 금액의 연봉을 받으며 거제도에서 일했다. 4년 차가 되던 해,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아토피가 점점 심해졌고 얼굴과 목에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이 올라왔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누가 우리 가족을 책임지지?


그런 흉측한 얼굴을 하고 업체 미팅이건, 현장이건, 어디든 다녔는데 그런 고통스러운 일이 없었다. 그때쯤 나는 대리로 진급을 했고, 업무는 늘어났다. 가려워서 잠을 못 자는 나날들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주중에는 야근을 했고 주말에는 전국 방방곡곡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사무실에 앉아 업무 메일을 쓰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옆에 크리넥스 티슈를 뽑아 들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계속 메일을 썼다. 몸이 아픈 것이 마음이 아픈 것으로 전염되었고 어느 순간 나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픔으로까지 치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해 보였는지 부서 선배가 휴직을 제안했다. 남은 연차에 2주 병가를 끌어다 붙여 일단 1달을 쉬어 보기로 했다. 1달 동안 한의원을 열심히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1달이 지나 회사 복귀를 이틀 앞둔 토요일, 그날도 한의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도로에 사고가 나있었다. 그 사고 현장을 보고 ‘내가 사고가 났더라면 다음 주에 회사 복귀를 안 해도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아픈 몸이었다. ‘교통사고 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귀를 했고 여전히 아픈 얼굴을 하고 일을 했다. 그때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주변 동료들이 내게 희망퇴직 신청을 권했다. 다들 내가 아픈 몸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희망퇴직으로 조금 길게 쉬면서 몸을 회복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냥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다른 회사로 이직할 능력도 없거니와, 이런 얼굴을 하고 또 다른 면접을 봐야 하는 것도 상상이 안되었다. 그래서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날 저녁 야근을 하느라 8시 반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다. 나는 모니터 옆에 조그만 거울을 두었는데 우연히 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정말 엉망이었다. 피부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야근하는데 어떻게 건강해지겠나, 이런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사라지는 게 나았다. 숨이 막혔다.


희망퇴직 신청에 대한 메일을 다시 열어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그날 밤, 밤새 희망퇴직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를 일단 그만둬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그다음 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고, 아침에 회사에 가자마자 파트장님께도 이야기했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아픈 것을 내내 지켜봐 오신 파트장님도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파트장님의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이렇게 많이 울 일이냐?


퇴직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도 하고 업무 인수인계도 하며 바쁘게 보냈다. 갑작스러운 사직 결정에 나도 울고 동료들도 울었다. 그 일주일 내내 울었다. 세상이 끝난 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그렇게 만 5년을 일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픈 몸으로 회사를 나왔고 나의 세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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