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발톱을 찧으셨어요?"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

by 런펀맨

대학생 때 친구들과 캠퍼스에서 종종 배드민턴을 즐겼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배드민턴을 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아파트 내 실내체육관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호회 가입비는 따로 없고, 배드민턴을 치러 올 때만 셔틀콕 2개(1개당 2천 원)를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가입했다.


예상은 했지만, 대다수 동호인의 실력은 뛰어났고, 나의 실력 걸음마 수준이었다. 대학생 때 배드민턴 교양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자주 치면서 상당 수준의 실력을 보유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마치 대학생(수준급 동호인)과 중학생(나)이 경기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가끔 나와 수준이 맞는 동호인(중학생급), 실력이 조금 앞서는 동호인(고등학생급)이 있어 2 대 2 복식을 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수준/실력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치는 배드민턴 경기는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다.


토요일 오전, 출석률이 높은 노련한 70대 할머니, 진중한 느낌의 50대 아저씨, 나만큼 엉성한 40대 아주머니와 함께 2 대 2 복식경기를 했다. 그날 하루에만 같은 분들과 3번 복식 게임을 함께 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셔틀콕을 받기 위해 발을 무리하게 딛는 바람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다쳤다. 처음엔 통증이 작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커졌다. 반나절이 지나니 걸을 때 오른발 절뚝거리게 됐다. 엄지발톱 속에서 피가 났는지, 발톱 색깔까맣게 변했다.


이틀 정도 절뚝거리며 다니다가 회사 근처 정형외과 방문했다. 발톱이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 의사 선생님에게 상담받기 위해서 진료를 청했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오른쪽 발의 양말을 벗고 엄지발톱을 의사 선생님에게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엄지발톱을 살짝 눌러본 후 나에게 물었다.


"(어떤 물건에 엄지발톱을) 찧으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지난 주말에 배드민턴 치다가 무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은 정색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찧으셨어요?"


나는 약간의 무안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아니요. 찧은 건 아니에요."


의사 선생님은 발톱 상태로 봤을 때 심각한 건 아니기 때문에 피를 뺄 필요는 없고 소염제만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발톱은 빠질 수도 있고, 안 빠질 수도 있다며 발톱이 위로 들리지 않도록 밴드를 붙이라고 했다.


며칠 후 비슷한 무안함을 느낀 일이 또 생겼다. 회사에서 맡은 업무의 특성상 공무원을 만날 일이 많다. 그날도 5급 공무원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7~8월은 여름휴가철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 중 하나가 '여름휴가'였다. 그분은 지난 7월에 결혼해서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요르카로 열흘간 신혼여행을 하고 왔다. 그래서 따로 여름휴가는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저도 5월에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습니다."


5급 공무원은 다시 나에게 물었다.


"그러시군요. 이번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


나는 7~8월 여름휴가대신해서 5월 미리 장기 휴가다녀왔다는 의미로 대답한 건데, 질문한 사람'예/아니요'라는 답변을 바란 듯했다. 의례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니 5급 공무원은 '예/아니요'와 함께 부수적인 설명 한마디만 듣고 싶어 했다. 생각해 보면 정형외과 의사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에 찧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사항이었기에 '예/아니요'라는 답변만 필요했다. 나는 '아니요'라는 답변은 생략하고 사유를 설명했지만, 그 설명은 의사에겐 불필요한 정보였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무안함을 느껴야 할 만큼 잘못 대답한 걸까?'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딸에게 친구들과 지내면서 3가지를 꼭 지키라고 당부한다. 첫째, 약속 지키기. 둘째, 거짓말하지 않기. 셋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이 3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가르친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따끔하게 훈육한다.


생각해 봤다. 내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점심 자리에서 5급 공무원의 질문에 (그 사람들 기준에서) 100점짜리 대답을 못 한 게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내가 반성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의 대답을 잘 들었다면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의사 선생님은 "운동하다가 다친 거고, 무언가에 찧어진 건 아니라는 말씀이죠?"라고 되묻거나, 5급 공무원은 "여름휴가를 앞당겨서 5월에 다녀오신 건가요?"라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대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설령 대화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시적/우발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계속적/반복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 위와 같이 일방통행식 대화를 하는 사람은 가급적 거리를 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멀리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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