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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바 Apr 21. 2024

재능도둑 거울을 보다

타인의 장점을 하나씩 골라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상상을 하고는 했다. 공부, 운동, 유머 더 나아가 외모와 성격 등 각기 다른 친구들의 장점들을 내가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상상을 하고는 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게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더 도둑놈 심보인걸 알게되었다.


저 중에 하나라도 심지어 외모까지도 따라해보려 했다. 공부를 해보겠다며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하며 필기하고 복습하고 예습하고 운동을 잘해보려 쉬는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잘하는 친구와 강당으로 뛰어다니고 유머러스해지고 싶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영상과 유행하는 밈들을 찾아다녔으며 잘생겨지고 싶어 비싼 스킨케어 용품과 옷들을 사들였다. 그러나 저 중 하나라도 잘하는 것이 버겁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공부는 잘하다는 기준이 참 애매모호한 영역이었다. 20등 하던 친구가 10등을 하면 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음 시험에 15등을 하면 못한 것이 된다. 노력을 안한 것이 돼버린다. 유일무이한 1등이 되던가. 그렇담 운동은 어땠을까? 운동은 통풍 때문에 포기해야 했었고 유머는 눈치와 센스의 영역이었으며 외모와 성격은 타고났어야 했다. 왜인지 모르게 자괴감에 빠졌다. 저 중에 하나라도 잘하는게 없다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채우더니 금세 나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왜인지 힘이 빠지고 그 자리엔 시기와 질투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남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나 까짓게 뭐라고 타인의 노력을 비난하고 깎아내렸다. 모든 것들을 재능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보려 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변명들을 줄지으며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로 만들었다. 스스로 불가능을 정의 내리며 수많은 장애물들을 만들어냈다. 당장 학교만 가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전교 1등, 축구부, 잘생긴 놈, 인싸 등등 그들이 모두 나와 다른 사람 같았다. 집에 와서는 가만있다 누워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또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수많은 밤들을 수많은 생각들로 지새웠고 잠시 생각하지 않으려 휴대폰을 볼 때면 또 그들의 모습들이 SNS에 올라오며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재능들이 다시 또 나를 낙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아침들은 눈을 뜨는 순간 모두 밤이 되었다.


안 그래도 밤이라 안 보이던 내 모습이 생각이 드리워져 더욱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각들로 앞으로의 나날들을 지새울 것인가. 이 고민 또한 나의 존재를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흐릿해질 때 누군가가 분명히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조금은 특별한 친구였다. 그 친구하고 있으면 왜인지 부러운게 없었다. 분명 나보다 잘하는게 많은 친구임에도 그 친구만큼은 왜일까 질투가 나지 않았다. 내가 위에서 나열한 것들을 대체로 다 잘하는 친구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부는 나처럼 못했다.)


그런 친구와 어떻게 연이 닿아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 친구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친구였지만 내가 이야기할 때만큼은 경청해 주었고 성격은 온화하였으며 가만있어도 조그만 미소를 머금던 친구였다. 한번은 그 친구 앞에서도 남들의 노력들을 비난하였다. 그렇게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다가 그 친구가 말하기를 내 이름을 부르며 '나는 네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듣기 참 싫어 그런데 왜인지 너랑은 계속 만나고 싶어' 이런 말까지 이렇게 이쁘게 하던 친구의 말은 내게 안개 같던 생각들을 걷고선 길을 보여줬다. 한순간 부끄러워졌다.


유일하게 내 말에 경청해 주던 친구다. 부정적인 말들조차 말이다. 내가 비난했던 모든 것들을 그 친구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한 말들이 마치 그 친구의 조각조각을 나누어 부수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친구가 한 말 중에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것은 그럼에도 나랑 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때의 그 말은 내 밑바닥을 보고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같았다. 어찌나 그 말이 내게는 믿음직한 약속이 되던지 내게는 따스한 햇살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뒤로는 의식적으로 그 사람들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수많은 멘토들을 만든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 노력을 훔치는 것이 아닌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을 노력한다는 게 참 이상한 말이지만 쉽게 말해 내 마음속 수많은 멘토들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내 장점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삶에 조그만 변화들이 생겼다.


예를 들어 전교 1등을 볼 때 그가 시험기간이면 점심조차 먹지 않고 초코프로틴 한보틀로 끼니를 때우며 공부하였고, 축구부는 땡볕 더위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유머러스한 친구는 생각 외에 고충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주변에 의지할 친구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도 이야기가 끊기면 불안해하고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웃기길 원했다. 그 친구만큼은 내게 말을 걸어주고 경청해 주었던 친구의 모습이 참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이야기할 시간들이 많아졌고 유머러스한 친구와도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이 어떤 포인트에 재미를 느끼는지 알게됐다. 그렇게 내 시선은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으로 확장되고 그렇게 받아들인 것들을 활용해 또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내 시야의 변화이다. 더 넓게 볼 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노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들이 내 삶에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노력을 재능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가리지 않는다. 칭찬을 할 때에도 마음에도 없는 가식이 아닌 상대에게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상대는 인정을 받았다고 느끼는 동시에 나는 또 하나의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보 또한 바뀌었다. 무엇인가를 뺏고 싶어 하던 마음이 어느새 상대에게 배워가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두려워하지 말자 타인의 장점을 빼앗고 싶었던 그 심보는 노력 없이 타인에게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들이 비치기만을 바라는 헛된 꿈이며 초라하고 나약한 내면일 뿐이다.


거울처럼 나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나의 멘토들과 함께 거울 앞에 설 때에도 말이다. 보이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조금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함께 비춰보며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서로가 상호보완하며 닮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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