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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pr 15. 2024

우연

2. 그와 나의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초가을,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즈음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날은 컨디션 난조로 미술학원에서 좀 일찍 집으로 향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공부도 실기도 버겁기만 하재수 시절이었다.

버스에서 막 내렸는데 저만치서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고,  그도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 신학생님


5년 전, 나는 중2였고 그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는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고 신학교에 진학했었다. 그의 신학교 진학은 시골 본당에서 제법 큰 뉴스였고, 그런 그가 방학때 본당에 와서 봉사하며 중등부 교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와 친해지게 되었다. 몇 안 되는 시골 마을 중학생들에게 신학생님과의 교리 시간은 즐거운 이벤트였고, 그는 우리에게 친근한 오빠이자 선생님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그 신학생님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반가움에 성당에 같이 가자는 그를  따라 성당으로 향했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나무 사이로 성당의 뾰족한 지붕이 보였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머리칼을 흩트리며 지나갔다. 뒤따르고 있는 나를 보며 그가 물어왔다.

“공부는 잘돼?”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잘 못하는 게 문제죠..ㅎㅎㅎ”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그랬다. 가고 싶은 대학에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고, 나름 인생의 고비라고 생각되는 시기였던 것 같. 그렇게 재수 중이었던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함께  걸어갔다.


마침 저녁 미사가 있 우리는 성당 뒤쪽 의자에 아 함께 미사를 보았다.  성당 미사 중에는 서로 마주 보며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는 예식이 있다.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평화를 빌어주며 인사던 그 짧은 순간 설렘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때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의 선물


미사를 마치고 막 나서려는데 그는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고 했다.

뜬금없는 그의 선물에 의아함 반, 기대 반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정아, 기도 많이 하니? ”

“아.. 잘 안 해요.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그는 힘들 때일수록 성당에 빠지지 말고 기도도 열심히 하라는 신학생님 다운 말을 건네며,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갑자기 묵주 선물이라니..' 안 하던 기도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받아야 돼, 말아야 돼, 싫다고 할까?'  망설이고 있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싫으면, 기도 열심히 하는 다른 사람에게 줄까?"

그의 장난기 어린 표정에 웃음이 터졌고 나는 묵주를 손에 꼭 쥐었다.


그는 자기보다 기도가 더 간절한 누군가에게 묵주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나에게 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 묵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제264대 가톨릭 교황)의 축성을 받은 묵주이며, 세공이 섬세하고 만지면 만질수록 반짝거리는 재질의 나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무가 반짝일 때까지 열심히 기도하라는 그의 당부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그 후 몇 개월은 대학입시 준비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기도할수록 빛이 난다던 묵주는 책상 서랍 안에서 그 빛을 잃은 채 고이 잠들 버렸고,

또다시 대학에 떨어지면 안 된다는 나의 불안함은 그날의 설렘, 약속과 함께하기에는 너무도 컸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설렘은 자연스럽게 잊혀 갔다.                


원하던 대학에 또 떨어지고 삼수는 할 엄두도 의욕도 없이 후기대를 지원할 때쯤,

성당 친구를 통해 그가 신학교를 나와 다시 일반 대학에 입학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의 손에 묵주를 쥐어주며 내 입시를 응원하던, 우연한 만남이 있었던 그날.

그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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