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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06. 2024

편지 찾기

5. 우편함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신학교 중퇴 후 군대를 다녀온 그는, 나와 같은 해에 대학교 1학년으로 시작했고 4년을 함께 다녔다.


같은 동네에 살던 우리는,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하고 하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오가는 1시간 거리의 통학길이 즐거운 데이트 시간이었고, 약속하지 않은 날도 우연히 만나면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좋았다.




# 비밀연애 & 편지


그는 하굣길이나 주일학교 교사 회의가 끝나면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의 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산이 있었는데, 우리는 헤어져 서로 다른 길로 갔다가 산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워낙 좁은 시골 동네이기도 하고 소문나는 게 싫어 조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이 이미 눈치채고 있는 비밀연애였다.  


산에서 만난 우리는 저만치 떨어져 걷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길을 지나 한적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그 길 끝에 우리 집이 있었다.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그와 함께했다.

비가 오면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눈이 오면 곱게 눈 쌓인 길에 함께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집 앞에 다 와서도 헤어지기 아쉬워,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오곤 했다. 참 많이 오갔던 길이였다.


학교로 온 그의 편지들~

그렇게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학교로 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나는 우리 과 우편함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그의 편지가 왔는지 확인했다. 한 번은 보냈다는 편지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행정실 찾아가, 그동안 배달된 편지를 몽땅 뒤져서 그의 편지를 찾아낸 적도 있다. 





커다란 자루에 가득 담긴 편지들을 쏟아서 일일이 확인한 후 다시 담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급했을까 웃음도 나지만, 사랑에 빠진 나는 하늘의 별이라도 딸 기세였다. 아무도 못 말리는 20대 청춘이었다.

ps, '보고 싶어 죽겠으니까..'(나도..)

모든 게 아날로그였던 그 시절 렇게 그의 편지를 기다렸다. 느리게 닿는 연락이지만 기다리는 만큼 반가움도 컸던 것 같다.

편지를 받은 날이면 온종일 웃고 다닌 기억이 난다. 그의 진심 어린 글들이 나를 웃게 했고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나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 편지는 계속 진행형


결혼 후에도 다투거나 내가 삐져있으면 그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출근하고 난 뒤 식탁 위에 편지가 놓여 있었고, 그의 편지를 읽으면 화가 났던 마음이 눈녹 듯 사그라들었다. 나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그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내가 잘 삐진다고 “삐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가끔 놀렸는데 그게 싫지 않았다. 그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와 주고받은 수십 통의 편지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본다. 편지 속 한 글자, 한 글자가 움직여 그때의 모습을 어제처럼 그려낸다.  젊고 빛났던 그와 나의 모습.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열렬히 사랑했던 그와 나의 모습을 바라보다 오늘도 천천히 편지를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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