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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05. 2024

기적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오늘

18.  어쩌면 오늘이 기적은 아니었을까..


그의 체중이 급격히 빠지고 입맛을 완전히 잃고 난 뒤에서야, 그가 위독해지고 있음이 체감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암은 그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응급실로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이 오셨다. 방법이 있을 거라는 꽃마을 신부님의 말씀처럼 분명 그가 회복할 다른 방법을 알려주시리라 믿었다.


선생님은 나를 응급실 한쪽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그의 위독함을 알려주셨다.

"지금 간의 종양이 악화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지금 상태면 2주를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


최근에 많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내 눈엔 금방이라도 툭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작은 희망조차 일순간에 무너지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안 돼요 선생님.. 안 돼요..."

"병원에서는 남편분이 편안하시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결국은 가장 피하고 싶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난 들어야만 했다. 

지옥이 있다면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응급실을 나와 꽃마을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신부님은 다른 방법을 알려주실 것 같았다.

"신부님.."

"어떡해요. 신부님.. 어떡해요.. 여기서도 방법이 없대요. 2주밖에 안 남았대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했다.


'어떡해요..'만 부르짖으며 두려움과 절망이 뒤범벅된 마음으로, 응급실 복도 끝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신부님도 속상하신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계속 흐느껴 우는 나에게,

" *캐롤린, 지금은 마태오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슬퍼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둡시다."


신부님은 곧 병원으로 오겠다고 하시며 나를 다독이셨다.

응급실 복도 끝,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울고 또 울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두려움이 되어 나를 휘몰아쳤다.



아들은 요양원 병실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따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주말이어서 병원은 더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고 바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의 소식을 듣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과 지인들도 병원 밖에서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슬픔을 간신히 추스른 후 눈물의 흔적을 닦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혼자 있을 그가 걱정되어 응급실로 돌아오니 마음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다.

수액으로 맞는 마약성 진통제 때문인지 통증도 없어지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그가 나를 보며 물어왔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황달 잡을 수 있대?"

그의 말에 한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다잡아야 했다.

"좀 더 지켜보자고 하시네. 검사 몇 가지 더 해보자고 하셨어."

에둘러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는 곧 병실로 올라갔다. 그가 좀 더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에 1인실을 예약했다.

청주로 다시 오니 훨씬 편안해 보였다. 집도 가깝고 가족들도 가까이에 있으니 여러모로 안심되는 듯했다.


좀 있으니 꽃마을 신부님과 또 한 분의 친구 신부님이 같이 병실로 오셨다.

신부님은 그의 손을 잡고 힘내라고 하시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빨리 회복해서 탁구 복수전 해야지" 신부님 말씀에, 꽃마을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신부님은 그에게 병자성사를 주셨다. 

병자성사 : 위독한 환자에게 주는 은총과 치유의 성사


가시는 길에 꽃마을 신부님은 "마태오에게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라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얘기해 주라고 하셨다.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2주 남았다는 말을 그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의 옆에 앉았다.

정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망설이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의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떼었다.


"자기야... 자기, 간성혼수가 올 수 있대...

만일.. 만일의 경우..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아까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잠깐 멈추고, 그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자기가 좋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신댔어. 알았지?"


"자기..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메모’하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치유기’를 보여주었다. 치유기 속 그는 췌장암을 이겨 내고 꽃마을 식구들 앞에서 어떻게 치유했는지에 대해 자신감 넘치게 발표하고 있었다. 언제 써 놓았는지 빼곡한 그의 치유기를 읽으며 하릴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치유기에 담겨있는 내용처럼 치유될 수 있다고, 치유돼서 발표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그는 통장 잔액, 보유한 주식, 후원금 자동이체 등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가 후원하던 단체들을 지금도 계속 이어서 후원하고 있다.)


말을 다 마친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지인,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병원에 머물 듯합니다. 제가 연락을 못 받으면 와이프에게 연락 주세요. 와이프 전화번호 남깁니다.


마치 내 말을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시간이 없는 걸 알아차린 것처럼..  




큰아들이 아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 시작했다.



# 캐롤린, 마태오 : 성당 본명

# 사진 : 가족여행 중 그와 나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멈추어버린 시간을 사랑하고 구독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 덕분에 지금까지 연재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기도 하고, 여전히 막막하기도 합니다.

삶의 끈을 붙잡고 있었던 가장 절실했고 생생했던 그의 마지막 30일.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이고, 저의 소명과도 같은 그 시간의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

좀 긴 글이 될 수도 있는 그의 마지막 30일도 함께해 주세요.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 8. 5. 작가 김수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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