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컸을까?' 막내아들이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너무 대견하면서도 참 슬펐다.
실랑이 끝에 받은 제대로 인쇄된 영정사진은, 그가 성모 꽃마을에 있을 때 완쾌를 다짐하며 찍은 스냅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치유기 발표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었다. 투병으로 인해 건강할 때보다 마르긴 했지만, 우리 눈에는 너무나 그립고 아름다운 그였다. 두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투병해 나가던 아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며, 나와 상의 후 영정사진으로 골랐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뜻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조문을 받다 보면 한 번씩, 왜 아팠을 때 모습으로 사진을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오랜만에 그를 보아 투병 중이던 그의 모습이 낯선 조문객들도 있었다. 건강할 때 모습으로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도 들려왔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그가 가장 예쁘고 빛났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왜 같이 정하고, 남들의 의견 때문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꿔야 하냐'는 큰아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끝내 내 의견을 존중해 주어, 그가 건강할 때의 빛나고 예쁜 모습으로 영정사진을 교체했다.
두 아들은 아빠를 참 자랑스러워했다. 장례식장을 정할 때 아빠를 찾아올 사람이 많을 거라고 확신하며, 병원에서 가장 큰 특실을 선택했다. 자신감 있게 결정했지만, 혹여 사람이 생각보다 안 오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두 아들이 아직 사회초년생이고, 심지어 한 명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데..' 혹여 두 아들이 실망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물론 그런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빠를 닮았는지 두 아들의 손님이 정말 많이 왔고, 남편의 손님은 그보다도 더 많이 오셨다. 밀려드는 문상객에 오히려 자리가 부족해 로비까지도 꽉 채우고 있었다. 두 아들은 잘한 결정이라고 뿌듯해했다.
같이 일하던 회사 동료분들, 그와 일하던 업체 사장님들. 이제 더 이상 그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의 가는 길을 애도해 주기 위해 한달음에 찾아주셨다. 두 아들에게 생전 아빠의 모습을 얘기하며 '팀장님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힘내서 살아가라고, 아버지가 아들들을 정말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몇 번을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참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며 아빠가 살아온 길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았는지 두 아들은 "아빠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고 가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큰아들은 장례식이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아버지와 잘 이별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추모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그리고 조문객들은, 눈물과 아쉬움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그와의 마지막을 맞이했고 이별을 준비했다.
큰 조카는 영정사진 앞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로 오열했고, 그의 동료는 사진 속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슬퍼했다. 친구는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소주잔을 건네며 허탈해했고,회사 동료중 한 분은 매일 아침에 와서 밤까지 머물며 정신없는 우리를 대신해 회사 사람들을 챙겼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3일장을 치르는 동안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복도는 그를 보내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듯 화환으로 가득 찼다.
장례를 마치고 화장터로 향하는 길에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그의 눈물이 꽃잎이 되어 내리는 듯,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사무치게 슬펐다.
4월 첫날 만우절, 그는 거짓말처럼 한 줌의 재가 되어 그의 유언대로 선산에 뿌려졌다.
하늘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가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안녕~ 내 사랑..
에필로그
[멈추어 버린 시간 Ⅰ]을 마무리하며..
그를 보내고 그와의 사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후회와 자책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는 후회하지 말라고 했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후회뿐이었습니다.
3월 30일. 그의 3주기를 보내고, 틈틈이 써 놓았던 글 3편을 정리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