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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09. 2024

하루살이가 모르는 내일

23. 에필로그


"하루살이는 내일을 알지 못하고, 메뚜기는 내년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알지 못하지만

하루살이가 모르는 내일이 있고, 메뚜기가 모르는 내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는다면 다시 만남을 기약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장례미사에서 신부님이 해주신 강론 말씀이었다. 

유가족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하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

믿고 싶은 걸 믿게 하는 힘, 간절함 만큼 큰 믿음은 없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 믿음이 되었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의 장례미사는 친구 신부님 4분이 함께 집전해 주셨고, 그가 가는 길을 든든하게 지켜 주셨다.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바로 장례 절차를 준비해야 했다.

두 아들은, 그가 만일에 대비해 알려주었던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렸다.


장례식장은 어디로 할지, 조문객을 위한 음식 종류와 양은 얼마나 할지, 영정사진은 어떤 사진으로 할 것이며, 제대를 장식할 꽃과 제사 음식 등등... 가장 정신이 없는 순간에 결정해야 하는 것들 많았고 원활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인쇄를 맡긴 영정사진이 도착했을 때, 낮은 화질 때문에 눈동자 속 동공이 구분되지 않았다. 의 얼굴이 이상해 보였고 가족들은 재인쇄를 요청했다. 하지만 다시 할 수 없다는 사진사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손님들이 조문을 오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 인쇄를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잘못 나온 사진을 그냥 쓰라우기는 사장님 모습에 가족들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막내가 나타나 조용조용 사진사에게 이야기했다.


"사장님께서 일부러 이렇게 프린트하지 않으셨다는 건 알겠습니다. 근데 저희 오늘 정말 힘들고 중요한 날이에요. 잘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막내는 조금씩 울먹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추가금이 필요하다면 드릴게요.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저희 사정 이해해 주시고 도와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잠시 말이 없어진 사진사는 다시 인쇄를 해오겠다며 사진관으로 돌아갔다.

막내의 모습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막내아들이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너무 대견하면서도 참 슬펐다.



실랑이 끝에 받은 제대로 인쇄된 영정사진은, 그가 성모 꽃마을에 있을 때 완쾌를 다짐하며 찍은 스냅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치유기 발표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었다. 투병으로 인해 건강할 때보다 마르긴 했지만, 우리 눈에는 너무나 그립고 아름다운 그였다. 두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투병해 나가던 아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며, 나와 상의 후 영정사진으로 골랐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뜻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조문을 받다 보면 한 번씩, 왜 아팠을 때 모습으로 사진을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오랜만에 그를 보아 투병 중이던 그의 모습이 낯선 조문객들도 있었다. 건강할 때 모습으로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도 들려왔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그가 가장 예쁘고 빛났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왜 같이 정하고, 남들의 의견 때문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바꿔야 하냐'는 큰아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끝내 내 의견을 존중해 주어, 그가 건강할 때의 빛나고 예쁜 모습으로 영정사진을 교체했다.   



두 아들은 아빠를 참 자랑스러워했다. 장례식장을 정할 때 아빠를 찾아올 사람이 많을 거라고 확신하며, 병원에서 가장 큰 특실을 선택했다. 자신감 있게 결정했지만, 혹여 사람이 생각보다 안 오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두 아들이 아직 사회초년생이고, 심지어 한 명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데..' 혹여 두 아들이 실망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물론 그런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빠를 닮았는지 두 아들의 손님이 정말 많이 왔고, 남편의 손님은 그보다도 더 많이 오셨다. 밀려드는 문상객에 오히려 자리가 부족 로비까지도 꽉 채우고 있었다. 두 아들은 잘한 결정이라고 뿌듯해했다.


같이 일하던 회사 동료분들, 그와 일하던 업체 사장님들. 이제 더 이상 그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의 가는 길을 애도해 주기 위해 한달음에 찾아주셨다. 두 아들에게 생전 아빠의 모습을 얘기하며 '팀장님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힘내서 살아가라고, 아버지가 아들들을 정말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몇 번을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참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며 아빠가 살아온 길에 대해 느낀 점이 많았는지 두 아들은 "아빠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고 가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큰아들은 장례식이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아버지와 잘 이별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추모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그리고 조문객들은, 눈물과 아쉬움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그와의 마지막을 맞이했고 이별을 준비했다.


큰 조카는 영정사진 앞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로 오열했고, 그의 동료는 사진 속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슬퍼했다. 친구는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소주잔을 건네며 탈해했, 회사 동료 중 한 분은 매일 아침에 서 밤까지 머물며 정신없는 우리를 대신해 회사 사람들을 챙겼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3일장을 치르는 동안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복도는 그를 보내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듯 화환으로 가득 찼다.




장례를 마치고 화장터로 향하는 길에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그의 눈물이 꽃잎이 되어 내리는 듯,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사무치게 슬펐다.


4월 첫날 만우절,  그는 거짓말처럼 한 줌의 재가 되어 그의 유언대로 선산에 뿌려졌다.


하늘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가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안녕~ 내 사랑..





에필로그


[멈추어 버린 시간 Ⅰ]을 마무리하며..


그를 보내고 그와의 사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후회와 자책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는 후회하지 말라고 했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후회뿐이었습니다.


3월 30일. 그의 3주기를 보내고, 틈틈이 놓았던 3편을 정리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어 4월 8일 첫 글 프롤로그를 올리고

두려움반 설렘 반으로 브런치에서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라이킷과 댓글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별의 아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브런치는,

시간을 되돌아가 그를 추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고,

사별 이후 지난하고 절망스러웠던 시간이 글을 쓰며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끝을 알고 전개되는 이야기에 늘 조마조마하며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

그동안 제 글에 공감해 주시고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지금까지 브런치북을 이어올 수 있었고,

한화 한화 이어질 때마다 저도 함께 성장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부족한 글로 그 사람을 남길 수 있어서 보람 있었습니다.

5개월의 긴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멈추어버린 시간 Ⅰ]을 23화에서 마무리하고,

[멈추어버린 시간 Ⅱ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Ⅱ에서는 사별 이후 홀로서기 과정을 담을 예정입니다. 좀 쉬었다가 올게요.


독자 여러분,

 추석 명절이네요.

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기원하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PS. 지금까지 퇴고를 함께 봐준 문과생 큰아들, 고생했다. 고마워 ~^^



2024. 9월 9일 작가 김수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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