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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02. 2024

천국을 꿈꾸며..

22.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아침에 일어난 그는 큰 형님 댁에서 삼겹살 파티하는 꿈을 꿨다며  꿈 얘기를 해줬다.


온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두 아들과 사촌들이 장난치는 모습, 조카 손주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 음식 준비에 분주한 큰형수에게 얼른 와서 같이 식사하자며 부르던 그 어느 날의 하루를, 그는 꿈속에서도 그리워했나 보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천국이었을까?

 



변비 때문에 고생하던 그가 토요일 저녁, 변을 시원하게 봤다. 이상하리만치 많은 양의 변이였다. 색이 검고 많은 양의 변은 임종 증상의 하나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아닐 거라고 마음속에서 강하게 부정했다.  


변기에 그대로 앉힌 채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샤워를 시켰다. 80kg이나 나가던 그의 단단하던 몸이 마르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에게 몸을 의지하는 그를 아기처럼 조심조심 닦아주었다.


수건을 가져오라는 내 말에 두 아들은 수건을 못 찾고 우왕좌왕했다. 수건을 찾아오는 그 짧은 시간, 그가 추울까 봐 내 마음은 노심초사였고 두 아들에게 수건도 못 찾냐며 짜증을 냈다.

 

다행히 샤워를 잘 마치고 옷도 말끔하게 갈아입은 그는, 편안하게 누워 아들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엄마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혼나고, 그걸 딱 못 알아채? 아들들 한참 멀었네.."

동동거리는 날 보며 불안했을 그에게 미안했는데, 그 와중에 농담하는 그를 보며 안심이 되었다.


그는 노곤한 지 일찍 잠이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나가자며 나를 깨웠다. 

며칠 새 부쩍, 병실 밖을 나가 잠시라도 산책하고 싶어 했다. 

멀리 가지 못하고 병원 복도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의 답답함이 좀 트이는 듯했다.

가끔 물을 한 모금씩 마셨고, 작은 얼음을 입에 넣어주면 시원한 느낌이 좋은지 미소를 지다.


"우리 수정이는 간호를 참 잘해"라고 말하며

휠체어 뒤에 있는 나에게 머리를 기대며 편안다고 말했다.


그렇게 병원 복도를 몇 바퀴 돈 후에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계속 잠만 자는 그를,

'여보..' 하고 흔들어 깨우면 눈을 뜨고 빙긋이 웃고는 금방 다시 잠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소변량이 급격히 줄었다.

가족들도 병원을 떠나지 못했고,  밤에는 돌아갔다가 아침이면 다시 왔다.


월요일 아침 여러 가지 기계들이 들어와 그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혈압계, 소변줄..

그리고 의사는 나를 따로 불러 연명치료 동의 여부를 물어왔다. 내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결정해야 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분의 정성에 이만큼 잘 버텨오신 것 같습니다."라고 안타까워하시며,

연명치료는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연명치료는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고 가족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연명치료 거부에 싸인을 했다.


언제라도 툭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는데 그의 모든 감각이 무뎌지며,

불과 하루 사이에 우리와 눈을 맞추지도 화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월요일 오후 회진의사 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이미 무의식 상태라고 말했다.


나 당신 보내기 싫어, 당신 하느님 곁으로 보내기 싫어!
여보, 내 말 듣고 있어?
 

그를 잡고 흐느끼며  울었다. 그는 로운 듯이 신음 소리를 내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내 눈물에 마음이 아파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 아빠 눈 좀 떠봐 아빠!!" 두 아들이 아빠를 불렀고,

"막내야 얼른 일어나야지, 형들 앞에서 뭐 하는 거야.. 막내야.. " 큰 아주버님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셨다.

큰 형님도 "삼촌.. 얼른 일어나서 우리 같이 삼겹살 파티해야지.. 삼촌.." 하시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셨다.


가족들 목소리에 대답하듯 그는 응응~소리를 냈다.

의사 선생님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지만,

그는 분명히 우리말을 알아듣고 있었고,

마지막 힘을 다해 대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조각 꿈과도 비슷하나이다.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술술 성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년도 하루 같은 시간, 영원한 천국에 그가 머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 화요일이 되었다.

가족들과 친구, 지인들이 모두 병원에 모였다.


멈추고 싶은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고, 한 명 한 명 그와 인사를 나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긴박한 상황을 알려주는 분주히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그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 막내가 부르짖 울며 소리쳤다.  


규칙적이던 그의 숨소리가 잠시 가빠다. 난 그의 가슴을 토닥였다.


내가 너무 울면 그가 마음 아파할까 봐..

떠나는 길, 나 때문에 한이 될까 봐...

눈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막내가 울먹이며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빠,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감사했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


큰아들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아빠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 고생했어 아빠. 이제 편히 쉬어요.."


아들들의 울음소리에 그는 신음 소리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차례 몸을 뒤틀며 크게 움직였다.


우리가 포기하고 보내려는 순간에도,

힘을 다해 우리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의 볼에 내 볼을 갖다 대었다. 여전히 따뜻한 그를 꼭 안았다.


"여보, 우리 한숨 자고 만나자.. 우리 한숨 자고 다시 만나자..."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는 그의 고운 숨이 멎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잠을 자듯 조용히 잠들었다.


나에게 모든 게 처음이었던 사람. 첫사랑이자 내 전부였던 그는

내 생애 가장 아픈 첫 이별을 남겨주고 그렇게 먼 길을 떠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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