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Aug 26. 2024

더 사랑한 날들

21. 그래서 더 아픈 날들


"하느님, 오늘 하루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이면 감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내 기도 소리를 참 좋아했다. 


"정이는 기도를 참 "라고 말하며 고운 미소로 날 바라봤다.

그런 그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오늘도 잘 생겼네. 울 신랑"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며칠 새 부쩍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손수건으로 그의 촉촉해진 눈가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많이 쇠약해진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수정아.."

"응~"

"사랑하고.. 네가 있어서 너무 기쁘고,

일분일초가 너랑 같이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정말 정말 고마워, 정말 정말 사랑해."

"응.."

"일분일초가 진짜로 행복해, 같이 있다는 그 자체가"

"나도.. 내 마음도 똑같은 거 알지"

"알어, 행복해. 진짜루.."

"...."

"사랑해.. 수정아.."


날 바라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그의 옆에 있었다.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고, 잠잘 때가 되면 보호자용 간이소파를 그의 침대 옆에 바짝 붙이고 누웠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잡고 저녁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는 9시쯤 속효성 진통제를 맞으면 새벽까지 푹 잘 잤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한번 갔는데, 그때 같이 일어나 그의 링거줄이 꼬이지 않게 들어주거나 침대에서 내려올 때 신발을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올 때 특히 주의가 필요했다. 혹시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약해진 뼈가 골절되면 큰일이었다. 의사는 몇 번이나 낙상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한 번은 잠결에 그가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왜 안 깨웠냐고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없었다며 괜찮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그를 간병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그때쯤 나도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연속되는 긴장과 염려로 체중이 많이 빠져 있었다.

깨웠는데도 내가 못 일어난 걸까.. 그는 종종 혼자서 화장실을 다녀왔고, 나중에 알고는 잠에 빠진 나를 자책하고는 했다.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붙잡고 싶은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내 생일이 돌아왔다. 생일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누가 챙겨 준다 해도 반갑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생일을 지나칠 수 없었던 가족과 지인들은 생일 케이크를 사 왔고 아들들은 선물을 준비해 왔다.


그렇게 조촐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그가 축가를 불러주겠다고 나섰다. 평소 임영웅 노래를 잘 따라 부르던 그는 '임영웅의 두 주먹'을 불러주었다.


두 주먹은 비트가 빠른 댄스곡인데 그가 느리게 부르는 두주먹은 마치 다른 노래인 것처럼 너무 슬펐다. 그도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중간에 멈췄고, 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밀려드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당신 두 손을 내밀어 봐요

내 사랑을 당신 손에 꼭 쥐여 줄게요

나에게 당신은 숨을 쉬는 공기야

내가 매일 마시는 소중한 물이야

내 가슴에 집을 짓고 사는 당신

오래도록 내 옆에 있어 주세요

함께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내가 당신 꼭 안고 갈게요


그는 더 이상 다음 내 생일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을까?

그가 불러준 '두주먹'은 지금까지 다시 듣지 못하는 노래이다.






생일이 지나고 그는 큰아들을 불렀다.

어머님과 형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며 큰아들에게 영상을 부탁했다.

아들 주례사에 이어 그가 남기는 두 번째 영상이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이건 만약을 위해 남기는 거라고,

자기는 앞으로도 희망을 가지고 치유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엄마! 막내예요"

그는 엄마를 부르며 목이 메이고 있었다.

"엄마께 더 효도하지 못하고 가서 많이 아쉬워요. 엄마가 저 때문에 상심하고 아프실까 걱정이 됩니다.

엄마는 강한 분이시니까 잘 이겨내실 거라 믿어요. 엄마 꼭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엄마."


나중에 엄마가 좀 진정되면 보여드리라고 말하며, 이어서 형들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미리 유언을 남겼다.


"큰형, 작은형..

제가 혹시 먼저 떠난다고 하더라도 저 때문에 후회하지 마세요. 슬퍼하는 건 오래도록 슬퍼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 때문에, 혹시 저한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자책하거나 후회하지는 마세요. 저는 좋은 곳으로 가는데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 때문에 괴로워하면 제가 그곳에서 편하게 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정이, 애들 걱정 안 해요. 형들, 형수님이 든든하게 계시니까요..

많이 사랑했습니다. 큰형, 작은형..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 친구들 고맙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화장해서 유해를 선산에 뿌려 달라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닫힌 공간을 답답해했었다. 작은 통 안에 넣어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게 몹시 싫었던지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다고 했다.


선산에 뿌리면 자기가 선산을 지키는 산지기가 되겠노라고 말하며 그의 유해로 작은 화분 하나 만들어 들꽃 하나 심어달라고.. 혹시 꽃이 죽더라도 상심하지 말고 다른 들꽃 하나 심으면 된다고.. 

그 들꽃에 꽃이 피면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는 이제 마음 편안하다며 먼 하늘을 응시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