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며칠 새 부쩍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손수건으로 그의 촉촉해진 눈가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많이 쇠약해진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수정아.."
"응~"
"사랑하고.. 네가 있어서 너무 기쁘고,
일분일초가 너랑 같이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정말 정말 고마워, 정말 정말 사랑해."
"응.."
"일분일초가 진짜로 행복해, 같이 있다는 그 자체가"
"나도.. 내 마음도 똑같은 거 알지"
"알어, 행복해. 진짜루.."
"...."
"사랑해.. 수정아.."
날 바라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그의 옆에 있었다.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고, 잠잘 때가 되면 보호자용 간이소파를 그의 침대 옆에 바짝 붙이고 누웠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잡고 저녁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는 9시쯤 속효성 진통제를 맞으면 새벽까지 푹 잘 잤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한번 갔는데, 그때 같이 일어나 그의 링거줄이 꼬이지 않게 들어주거나 침대에서 내려올 때 신발을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었다.그가 침대에서 내려올 때 특히 주의가 필요했다. 혹시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약해진 뼈가 골절되면 큰일이었다. 의사는 몇 번이나 낙상을 주의하라고 당부했었다.
한 번은 잠결에 그가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왜 안 깨웠냐고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없었다며 괜찮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그를 간병하며 가장 힘들었던 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그때쯤 나도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연속되는 긴장과 염려로 체중이 많이 빠져 있었다.
깨웠는데도 내가 못 일어난 걸까.. 그는종종 혼자서 화장실을 다녀왔고,나중에 알고는 잠에 빠진 나를 자책하고는 했다.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붙잡고 싶은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내 생일이 돌아왔다. 내 생일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누가 챙겨 준다 해도 반갑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생일을 지나칠 수 없었던 가족과 지인들은 생일 케이크를 사 왔고 아들들은 선물을 준비해 왔다.
그렇게 조촐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그가 축가를 불러주겠다고 나섰다. 평소 임영웅 노래를 잘 따라 부르던 그는 '임영웅의 두 주먹'을 불러주었다.
두 주먹은 비트가 빠른 댄스곡인데 그가 느리게 부르는 두주먹은 마치 다른 노래인 것처럼 너무 슬펐다. 그도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중간에 멈췄고, 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밀려드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당신 두 손을 내밀어 봐요
내 사랑을 당신 손에 꼭 쥐여 줄게요
나에게 당신은 숨을 쉬는 공기야
내가 매일 마시는 소중한 물이야
내 가슴에 집을 짓고 사는 당신
오래도록 내 옆에 있어 주세요
함께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내가 당신 꼭 안고 갈게요
그는 더 이상 다음 내 생일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을까?
그가 불러준 '두주먹'은 지금까지도 다시 듣지 못하는 노래이다.
생일이 지나고 그는 큰아들을 불렀다.
어머님과 형들에게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며 큰아들에게 영상을 부탁했다.
아들 주례사에 이어 그가 남기는 두 번째 영상이었다.
그는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이건 만약을 위해 남기는 거라고,
자기는 앞으로도 희망을 가지고 치유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엄마! 막내예요"
그는 엄마를 부르며 목이 메이고 있었다.
"엄마께 더 효도하지 못하고 가서 많이 아쉬워요. 엄마가 저 때문에 상심하고 아프실까 걱정이 됩니다.
엄마는 강한 분이시니까 잘 이겨내실 거라 믿어요. 엄마 꼭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엄마."
나중에 엄마가 좀 진정되면 보여드리라고 말하며, 이어서 형들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미리 유언을남겼다.
"큰형, 작은형..
제가 혹시 먼저 떠난다고 하더라도 저 때문에 후회하지 마세요. 슬퍼하는 건 오래도록 슬퍼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 때문에, 혹시 저한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자책하거나 후회하지는 마세요. 저는 좋은 곳으로 가는데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 때문에 괴로워하면 제가 그곳에서 편하게 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정이, 애들 걱정 안 해요. 형들, 형수님이 든든하게 계시니까요..
많이 사랑했습니다. 큰형, 작은형..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 친구들 고맙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화장해서 유해를 선산에 뿌려 달라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닫힌 공간을 답답해했었다.작은 통 안에 넣어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게 몹시 싫었던지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다고 했다.
선산에 뿌리면 자기가 선산을 지키는 산지기가 되겠노라고 말하며 그의 유해로 작은 화분 하나 만들어 들꽃 하나 심어달라고.. 혹시 꽃이 죽더라도 상심하지 말고 다른 들꽃 하나 또 심으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