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이렇게나 좋았던가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눈이 올거라는 예보와는 다르게 고속도로는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얼마나 감사한지)
집에 오자마자 짐부터 나르고 남편 몰래 미리 주문해 둔 납작 접시 택배상자부터 챙겼다.
집에 올 준비는 제주도에서부터 시작했다. 쿠팡에서 화장지와 비닐장갑 납작 접시 등을 주문했다. 홈커밍 모드로 빠르게 돌아간 것이다.
내일 월요일 전자책 수업이 취소되어 오전에 미장원을 다녀오고 11시 반에 정수기 필터 갈고 곧바로 동생집으로 튀어가서 맡겨놓은 택배를 찾아오면 되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산 18킬로의 레드향 더미는 이제 사분의 일로 줄어 들었고 가져간 김치통의 김치는 두 덩어리만 남았다.
보름간 한 살림 하고 와보니 집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이온아이져 샤워기로 한번만 물을 뿌리면 냄새가 제거되는 화장실도 락스를 쳐발라도 냄새 안 빠지는 남의 집 화장실보다 천만배나 낫고 집에서 내려마시는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의 하우스 블렌드 스타벅스 커피도 남의 집 커피머신보다 맛있다.
밤에 바람 때문에 덜거덕거려서 호러물를 찍는 일도 없이 조용한 우리집이 남의 집보다 훨씬 낫고 빌려준 집에다 곳곳에 '만지지 마시오' 하는 주인 행세를 하는 스티커도 안 보여서 좋다.
보일러를 안 켜고 갔음에도 영상 17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남향의 조그만한 우리 아파트가 이렇게 따뜻하고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집이 좁다고 큰 아파트로 이사갈 것만 궁리하고 있었으나 우리집이 이렇게나 따뜻하고 아늑한 데다가 아이 학교도 코앞인데 이런 집을 두고 어디로 가나 싶다.
여행 가기 전에는 뭔가에 쫒기듯이 이것저것 마음만 분주했는데 여행이란 정말 뭔가 마음의 정돈을 하는데 확실한 선을 그어주는 것 같다.
뿌옇게 혼돈된 생각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서고 있다.
이제 제주도는 십년간 가지 말자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보름간의 제주 임팩트가 나에게 준 결론이다.
나는 집에 콕 박혀 있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나만의 일상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굳이 제주도를 가지 않아도 내 일상은 여행이 될 것이다.
보름간의 제주살이를 마치며 나는 내 일상이 여행이 되어가는 가벼움을 만끽하게 된 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내 집을 보며 나는 몇 권의 책을 더 주문 했다.
나의 길로 돌아오기까지 나만의 생각 정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모든 게 감사해진 지금
어질러진 방에서도 꿈꿀 수 있음을 발견한 지금
나는 납작접시를 씻고 브런치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만하면 감사할 일 투성이.
감사의 재발견이다.
------------제주보름살이 ------------
연재 끝
https://youtu.be/J0NP8P3S2a0?si=Bv1OYM6Zq2KcjbQ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