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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Apr 25. 2021

대장내시경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다.

 Zoom 수업이 끝나고 과제물을 다 제출하고 나니

시간이 무기력하다고 느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던 어느 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욕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그날 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럴 때 또 무슨 일인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겹쳐졌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나 변을 보면 변에 피가 섞여서 나와요."

"음, 변비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니요, 변을 보고 나면 선홍색 피가 아니고 피 색이 변한 덩어리 같은 게 나와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조금 전 무기력하다고 느꼈던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였다.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물어봤다. 며칠 전부터 그래서 항문외과에 예약을 했다고 한다.

"엄마, 화요일 병원에 갔다 와서 다시 전화할게요."

그렇게 딸은 전화를 끊고, 나는 떨기 시작했다. 화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인터넷으로 변을 볼 때 피가 나오는 경우를 다 찾아보며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안 와 결국은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와! 밤을 지새워도 일을 잘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이틀간은 일을 잘했다.

삼일째 되는 날 나는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시계를 보며 정신없이 오전일을 마쳤다.

수업을 하는 시간은 무리 없이 잘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니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초저녁 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화요일이 되었다.

"엄마, 병원 갔다 왔어요. 근데 치질, 치루 다 이상 없데요. 대장이 너무 많이 부어서 건들기만 해도 피가 난다고 대장내시경을 하래요."

나는 너무나 겁이 나기 시작했다. 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떨고 있었다.

"엄마, 대장 내시 경해 봤어요?"

"아니, "

"아빠는요?"

"아빠도 안 했지."

"그럼, 제가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네요."

그렇다 나는 장이 건강하기도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봐 대장 내시경은 안 해봤다.

그날부터 1주일간은 나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변을 보면 변이 이상했다. 아침 일찍 내가 건강해야 딸을 잘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 처음 증상부터 이야기를 했다. 변이 자꾸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에요. 화장실에 가면 방귀가 길게 나오고 변은 손가락 한마디만 하게 떨어지는데 점액질 같은 것도 나오고 그래요 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신경성이에요. 하신다. 약 지어 드릴 테니 약 먹으며 마음을 편안히 하세요 한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했다. 너 혹시 시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변이 그렇게 나왔던 것 아니냐고, 그리고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그랬더니 딸아이도 천천히 생각해보고 전화한다고 했다.

"엄마, 내가 설사 같은 것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날 밤 불족발을 시켜서 먹으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랬었다. 딸아이가 시험 준비하는 것이 있었고, 아들이 불족발을 먹자고 해서 생전 처음으로 야식을 시켰는데 매운 것을 못 먹는 딸이 그날따라 먹겠다고 해서 함께 먹은 기억이 났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피가 그것도 변을 볼 때마다 덩어리가 되어서 나온다니 무섭게 걱정이 되었다. 일할 때 잠시 잊었다가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나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은 딸아이 걱정하는 시간이 길어져갔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대장내시경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하루 일을 쉬고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도착했다. 딸아이가 전철역에 마중을 나왔다. 딸아이가 아무것도 못 먹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갔는데 딸의 얼굴은 더 수척해 보였다. 오후 5시부터 금식이고 9시부터 30분 동안 14알의 속 비우는 약을 포카 리스 위이터 1.5L와 시간 배분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약을 먹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내가 마음이 아팠다.

"엄마, 나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요."

"그래서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엄마, 밤새도록 여러 경 우의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담담해요."

그렇게 말하는 딸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것도 내가 해줘야 할 것이 없었다. 약을 다 먹고 함께 침대에 누웠다. 화장실 가는 시간 간격이 길어지면서 조금은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어젯밤을 새웠다면서 내일 검사받으려면 잠을 자야 한다고 했더니 딸아이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고 노트북을 켰다. 앞으로 사업계획을 보여줬다. 나도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딸아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컴과 학생들이 접근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딸아이는 일어나질 못했다.

"엄마, 10시 20분에 일어날게요." 하고 자는데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해서 깨워서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엔 젊은 이들은 없고 노인들의 수가 많았다. 위와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 노인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딸아이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시간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켰다. 그런데 폰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환자 보호자들의 기다림


검사대기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검사 중 칸에 딸아이 이름이 올라왔다. 나는 딸아이가 아무 탈 없길 간절히 기도하며 전광판을 보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회복 중 칸에 딸아이의 이름이 올라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의 검사 시간보다 너무 빨리 끝나서 젊은 아이라서 별일이 없이 빨리 끝났구나!라는 생각과 아니면 손을 댈 수가 없어서 빨리 끝났을까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를 반복하며 딸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회복시간이 되기도 전에 딸이 내 앞에 서있었다.


검사 전에 의사가 대장내시경 몇 번째예요? 하고 물어서 처음이요. 하고 눈이 떠져서 눈을 떴는데 벌써 다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접수하는 곳에서 차트를 받아서 5층 진료실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라 한참을 기다렸다. 담당의사와 마주 앉았다. 처음 보는 대장 내시경은 어떤 것이 정상인지 알 수는 없지만 4개의 사진 중 두 개는 출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장 벽에 혈관이 보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담당의사가 말해 줬다. 그러고 보니 대체로 건강한 것 같았다. 맹장 있는 부위와 직장 있는 부위가 출혈이 있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주며 어떤 일로 인해서 피가 나오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조직검사가 들어갔다고 하며 다음 주 화요일에 약을 처방하겠다고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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