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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Jan 11. 2023

새 삶을 위해 선택한 이혼이 주는 고통

2. 혼자보다 더 고독한 결혼 그리고 이혼

커피 향에 이끌려 추억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평택에서 일하고 있던 선희는 명절에 시댁에 가기 위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명절휴가가 시작하던 날 남편이 시누를 옆에 태우고 평택집으로 찾아왔다. 시골집에 가는 길이라며 먼저 갈 테니 나중에 오라고 해서, 두 아들을 먼저 데려가라고 했더니 나중에 함께 오라고 하며 떠나려는 남편의 차를 바라보았다. 남편옆에 시누이가 부인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정하게 앉아서 있는 모습이 기분 나빴다. 선희의 작은 차에 아이들을 태워가는 것보다 좋은 차에 태워가면 일하기도 편할 텐데,  했더니 남편은 휑하니 달려갔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시댁에 가서 또 명절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몸이 많이 피곤했다. 남편과 시동생, 시누들은 앉아서 화투치기를 하면서 뭐가 좋은지 연신 하하 호호 웃으며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며 즐겁게 놀았다. 선희는 명절음식을 만들다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명절전날 병원 응금실로 가서 입원하고 병원신세를 졌다. 남편은 아픈 아내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명절에 너 때문에 엄마와 동생들이 고생을 했다고 투덜거렸다. 결혼 전에 받아보지 못한 천대를 받는 기분 또한 더러웠다. 남편의 그런 태도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생각하니 그때 왜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그녀는 명절에 쓰러진 후로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살았다. 그녀는 항상 남편한테 따뜻한 밥을 해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어렵다고 돈 좀 해달라고 해서 결혼 전에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서울의 조그만 아파트를 팔아서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IMF가 왔다. 그러면서 남편의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남편이 돈 좀 해달라고 했다. 그때는 돈을 융통할 수가 없어서 못해줬다. 그런데 친정엄마는 돈을 해주고 남편인 자신한테는 돈을 안 해준다고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관리비를 내지 못해서 고지서가 쌓여가는데 남편은 그것을 보면서도 모른척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돈을 조금씩 빌려야만 했다. 그때 그녀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녀가 살면서 직장 그만둔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아이들을 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시기에  남편의 회사는 시댁식구들 간의 돈 문제로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녀는 결혼 전 부자를 꿈꾸지 않았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이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쉽게 일자리도 손을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원했던 가족의 행태는 일그러져서 다시는 펴지지 않을 것 같은 양은냄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고. 남편에게 위자료며 아이들 양육비도 안 받기로 하고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해야지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런데 큰 아들이 이혼한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던 반포주공아파트는 5층아파트로 서울에서는 생활하기가 편리하고 단지 내에 학교가 있어서 아이들을 키우기도 좋아 월세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녀의 전공을 살려서 일을 시작을 했다. 그런데 큰아들은 매일 옥상에 올라가 불량학생들을 끓어 들여 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지 내 슈퍼에 물건을 대주는 아저씨가 자기의 아들은 중국에서 공부해서 국제변호사가 되었다며 아이들 중국에 유학 보내고 싶으시면 연결시켜 준다고 해서 국제변호사라는 말이 어떤 확신을 주듯 6학년과 4학년인 아들 둘을 중국에 유학을 보냈다.


그렇게 라도 해야 야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열심히 돈을 벌테니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큰아들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환경에 적응을 못했다. 매일 전화해서 냄새나서 밥을 한 번도 못 먹었다며 조금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울고 불고 해서 그녀가 중국에 가봤더니 소개해준 아저씨한테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기숙사라는 곳이 더럽고, 냄새가 나서 그녀도 코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주변에 새로운 숙소를 얻어주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큰아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아들은 가끔은 아빠한테도 다녀오고 때로는 엄마도 위로하는가 하면 속을 뒤집어 놓으며 엄마가 이혼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할 때는 힘들고 견디기 어렵지만 큰아들과는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중국에서 잘 적응하며 공부하는 둘째 아들한테 돈을 대주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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