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I get a water? 기내판 영어 홍길동

by 영이

2016.12.19.


출국.


해외를 처음 나가보는 건 아니었지만, 모두가 차려놓은 것에 숟가락만 올리던 여행과 모든 걸 내가 준비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 앞에 홀리데이*(holiday, 휴가, 방학;휴일)는 홀리데이 같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 타 본 외항사 국제선, 직항보다 저렴해서 고른 중국동방항공. 승무원 모두 친절하고 좋았지만,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의 마음이 이랬을까?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에 가까운 내 모습을 보니 외국을 가기도 전에 먼저 쭈구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Can I get a water?'

이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몇 번씩 연습하고 겨우 시키려는데 나도 모르게 water 대신 drink라고 말했는지 음료를 고르라는 말에 어색한 미소와 pardon이 절로 튀어나왔다.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은데 'Orange'를 '어륀지'로 할지 '오렌지'로 할지 머뭇대다가 한 껏 혓바닥을 굴려 어륀지라 했는데 승무원은 알아듣지 못했다. 다급하게 두 마디를 외쳤다. "오렌지! 오렌지!"


대체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호주에서 일하고 살아보겠다고 온 건지…, 그동안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스스로 민망함이 밀려왔다. 민망함도 잠시, 여러 번의 기내식과 잠을 반복하다 보니 3시간이 지났고, 중간에 환승 후 9시간이 더 지나고 드디어 시드니에 도착했다. 장시간 비행을 겪고 나니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기필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직항을 타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가 온 지도 모를 시드니, 국제공항에 발을 딛고 나니 진짜 실전이구나 싶었다. 역시 내 상태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전에 부딪혀보는 거란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먼 타국, 우리나라의 정반대인 남반구의 한 도시에 혼자로서 시작이라니…, 아직까지는 기대의 떨림 보다는 두려움이 좀더 큰 떨림으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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