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당일 지하철에 가방 두고 내린 썰, 워홀 0일 차

by 영이

2016.12.19.


"야.. 가방은?"


마중을 온 재현이의 한 마디에 나는 곧장 얼어버렸다. 손에 캐리어는 있는데, 매고 있던 백팩이 없다. 아뿔싸, 타고 있던 열차에 가방을 두고 내린 것이다. 그냥 가방이었으면 몰라도 문제는 오늘 당장 출국인데 여권, 티켓, 그리고 환전한 모든 돈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미 돌아봤자 열차는 지난 지 오래고, 하루종일 걱정만 채우던 머리통이 결국 사고를 쳤다.


당장 출국일에, 티켓만도 아닌 모든 게 담긴 가방을 두고 내리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 상황에 친구도 놀라서 망연자실하고, 나 또한 입은 안 떨어지고, 다리에 힘은 풀리고, 머리는 새하얗게 질리더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야! 어떡해?' 하는 친구의 외마디에 잠깐 정신이 들었다가 어쩔 줄 몰라하며 28인치 캐리어를 끌며 좌로 우로 왔다 갔다 하는데 옆에서 함성소리 같은 게 들렸다.


"긴급통화!! 저기 옆에 긴급 통화 박스!!"

아까 열차 앞에서 지나쳤던 직장인 그룹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의 아저씨 한 분께서 저신 없던 우리에게 소리르 쳐주신 것이다.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곧장 왼쪽 편에 긴급통화 박스로 향한 후 버튼을 누르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역무원분은 상황을 파악하고 열차 칸에 직원에게 조사를 요청하고, 유실물로 접수되면 모이는 역사를 안내해 주셨다.


큰 한숨이 내쉬어졌다. 다시 연락을 받았는데 기억하는 열차 칸에서는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숨이 턱 막혔다. 그렇다고 이미 달리고 있는 열차에 뛰어들어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공항으로도 갈 수 없으니 유실물이 모인다는 역사로 가기로 했다.

터벅터벅, 거의 혼이 반쯤 빠져나간 모습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도 친구도 말이 없었다. 한 번씩 한숨과 핀잔 섞인 친구의 타박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동하다가 한통의 연락이 왔다.


"혹시 남색가방, 자물쇠 달려 있는 가방 맞나요?"

"어?! 맞습니다! 맞겠죠..?!"


부랴부랴 폰을 꺼내서 서울메트로 유실물 게시판을 보니 '남색 배낭(주인 연락됨)'표시를 봤다. 보관장소인 사당역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이것도 참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유실물 센터가 있는 사무실에 가보니 내 가방이 맞았다. 안도의 숨을 몰아 쉬다가 문득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출국!'




만약 같이 마주 나온 재현이가 "야, 가방은..?"하고 물어봐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탔던 4호선 열차가 '사당행'이 아닌 '오이도행'이었다면, 그 순간 생면부지의 아저씨도, 코레일 근무하시는 아저씨도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출국이고 뭐고 카톡 페북 다 지우고 어디 조개구이 가서 오이도나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호주를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진이 빠져서야 원.. 누구도 이렇게 힘들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만든 구렁텅이 었지만, 이 정도면 전초전은 확실히 치른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가방은 찾았고, 마중 나온 친구와 밥 먹고 출국하려 일찍 나선 것이 그동안 까먹은 시간을 겨우 수복했고, 우여곡절 끝에 티켓팅과 출국 수속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계획은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몸소 느끼고 나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이번 분실 사고로 이건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귀중품과 중요한 것은 꼭 몸에 지니고 있을 것!

2. 불안하다고 불안에만 꽂혀있지 않을 것!

3.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황에 대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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