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요일의 딱 한 장
딱 한 장을 고르는 일 너무 힘겹다. 아침 한 장 점심 한 장 저녁 한 장 이렇게면 몰라도. 구구절절 하루 이야길 풀어놓을까 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 요 글을 시작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퇴근 후 을지로에서 한 언니를 만났다. 동유럽 어느 나라에서 나흘을 함께 보낸 적 있다. 밀고 접고 두드리는 여러 개의 문이 있는 노란 집이었다. 시큼한 호밀빵이며 당근 파운드를 구워주는 호스트가 있었고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아주 먼 미래에도 이곳을 그리워하게 되리란 걸 알았다. 먹통이 된 카드와 삼십 인치짜리 하드 캐리어와 빠리에 대한 그리움을 끌고 왔는데도 그랬다.
프라하에서 꼴레뇨와 코젤 다크를 주문해야 하는 것처럼 을지로 3가에 오면 마늘 통닭과 노가리를 시켜 생맥주를 마셔 주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목적과 규격을 갖추지 않은 발화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오는 271 안에서는 언니가 갑자기 보내준 기프티콘에 놀라 답장으로 감동 눈물 흘리는 토끼 이모티콘을 보냈고, 동기와 통화를 하며 어디 차를 타고 나가잔 기약 없는 약속을 했고, 서대문 충정로 아현 신촌을 지나는 꽤 익숙한 차선을 바라보며 오늘도 적당히 예쁘고 쓸쓸하고 다정하구나 생각했다.
집 오르는 계단에서 카톡 알림을 확인했다. 연남동 에디터 언니로부터 오늘 달이 예쁘니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라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옥상 문을 여니 정말로 달이 예쁘게 떠 있네. 역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p.s. 옥상 문 잠금장치는 바깥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갇혀 아래층 내 방으로 가지 못할 일은 전혀 없는데도, 나는 매번 불안해져 한 손으로 문을 한참 잡고 있는다. 나의 하루와 하루와 낮과 밤은 자그마한 아름다움과 사소한 불안들로 직조되어 있다. 그리고 말을 자꾸만 덧붙이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