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나를 붙잡아준 블로그와 새로운 배움

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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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깊은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던 그 시기, 40년을 함께한 친구 지민이가 책 한 권을 병실로 보내주었다.

“쉬는 동안 이 책 읽어봐. 그리고 블로그 한 번 해보는 거 어때?”

몇 년째 이어지는 내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

지민이는 항상 그랬다.

내가 힘들어 보이면, 늘 말 대신 책을 건네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책 속엔 늘 내가 고민하던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이 들어 있었다.


친구 덕분에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엄마 아빠 이야기, 그동안 부모님 간병으로 마음 아팠던 날들, 유방암 진단부터 수술까지의 과정들,

그리고 유방암 환자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정보들까지,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유방암 환우들이 모여들었다.

서로의 글에 공감하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나, 다시 살아가고 있구나.’


수술 후 회복하는 몇 개월 동안, 엄마 아빠를 돌보는 일은 동생이 맡아주었다.

동생은 기꺼이 미용실 문을 닫고, 내가 하던 것처럼 엄마 아빠의 병원 진료를 챙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사이 오빠와 새언니는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찾아가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었다.

삼 남매는 각자의 방식대로 엄마 아빠를 돌보며, 어느새 하나로 묶여 있었다.


다행히도 엄마 아빠는 내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몇 개월 동안, 갑작스럽게 찾아가지 못하고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는 나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하신 것 같다.

엄마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1년 넘게 이어진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 그 마음을 드러낼 여력이 없으셨던 것 같다.

아빠는 기억이 흐려지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시기라, 내가 찾아가지 않고 전화만 드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실 겨를이 없으셨다.


사실 우리 셋은 어릴 때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삼 남매가 각자 성격이 너무 달랐고, 다투기도 자주 했다.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이 동시에 아프시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블로그 덕분일까, 아니면 엄마 아빠를 모시고 병원으로 오가던 시간이 줄어들어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걸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회복하고 나면 아픈 엄마 아빠를 좀 더 잘 돌보고 싶다.’

그 마음에 이끌려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했고, 이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며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노인 복지, 발달장애인 복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꿈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

수술 후 나는, 단지 몸만 회복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삶’도 다시 회복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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