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부모님 두분의 간병으로 몸도 마음도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을 즈음, 아빠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던 그 무렵, 2021년 1월. 너무나도 착한 남편이 1년에 한 번 회사에서 진행한 건감검진에서 갑상선 이상 소견이 나왔다.
엄마처럼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서 같은 해 3월, 그는 갑상선 전절제 수술과 림프절 전이가 확인되어 림프절 곽청술을 받았고, 그 해 여름에는 동위원소 방사선 치료까지 이어졌다.
이미 친정 부모님의 간병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내게, 남편의 암 진단은 또 하나의 커다란 쓰나미였다.
그런데도 남편은 단 한 번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신도 환자가 되었음에도, 내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친정에 다녀오는 걸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묵묵히 회사와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고맙고 미안해서, 오히려 숨이 막힐 듯했다.
그즈음,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무너진 상태였다.
매일 밤 혼자 캔맥주를 마시며 겨우 하루를 정리하던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맥주 한 캔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2캔, 3캔을 마셔야 겨우 알코올 기운에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어가던 중 같은 해 2021년 12월, 이번에는 내게 유방 상피내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변이 모래알처럼 퍼져 있어서, 오른쪽 유방 전절제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22년 2월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조심하던 중,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코로나에 확진되었고 아이들과 생활을 분리하려 에어비앤비를 구해 혼자 지내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남편과 나까지도 감염되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수술은 한차례 미뤄졌고, 다시 잡은 수술 날짜에는 수술팀 의료진이 코로나 확진으로 또 한차례 수술이 미뤄졌다.
계속 반복되는 수술 연기, 나는 끝이 없는 어긋남 속에서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무너졌다.
그렇게 몇 번의 수술이 미루어진 끝에 2022년 3월, 유방암 전절제 수술과 조직확장기 삽입 수술이 함께 이루어졌다.
나보다 더 아픈 엄마, 아빠에게 “내가 아프다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얘기할 수 없었다.
내가 아픈 걸 알게 된 순간 엄마 아빠가 느낄 죄책감과 슬픔을 안 그래도 힘든 두 분께 더 얹혀 드리고 싶지 않았다.
수술받는 날, 수술대 위에 누워서 대기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파서 수술받는 것도 서러운데 엄마, 아빠 모르게 수술받는 내가 너무 가여웠다.
상피내암이라 했던 암은 조직 검사 후 미세 침윤이 확인되어 유방암 1기라는 최종 진단이 내려졌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술 후 단 한 달 만인 4월, 수술 부위에 감염이 생겨 오른쪽 유방 전절제 후 넣어두었던 조직확장기를 제거하는 재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엄마, 아빠 모시고 그냥 죽어버리면 안 되나' 싶은 나쁜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입원한 병원에서도, 수술 후 병실에서도 내 머릿속에는 계속 아픈 엄마와 아빠 생각뿐이었다.
“혹시 이 사이에 엄마, 아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이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지?”
무력감과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 앞으로의 걱정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2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시련이 몰아칠 수 있구나.’
‘나는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정말 이사를 잘못한 걸까.’
끝도 없는 자책이 이어졌다.
내 삶이 너무 가여워서 매일 눈물이 쏟아졌다.
캄캄한 터널,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나는 홀로 갇힌 사람처럼,
숨 쉬는 법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