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간병이라는 일상에 갇히다

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by 리치그로우


엄마 아빠가 아픈 와중에도 마침내 부모님의 아파트 인테리어가 끝났다.

우여곡절 끝에 두 분은 50여 년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엄마의 오랜 소원, “아파트에서 살아보기”라는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이미 엄마는 중증 암 환자가 되어 있었고 아빠는 치매 진단을 받으신 상태였다.

새 집, 새 공간에서 두 분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걱정하던 나와 달리 낯선 집, 낯선 공간에서 두 분은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새 아파트에서 행복을 누릴 시간보다 좌절과 고통을 먼저 느꼈을 두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했다.


엄마 아빠의 집은 경기도 광주, 그리고 우리 집은 경기도 일산.

차로 75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왕복하면 150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그 길을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쉼 없이 오갔다.

출퇴근 시간으로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한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 나는 우리 집을 나섰다.

광주에 도착해 엄마와 아빠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받게 하고, 항암 치료를 받게 하고, 약을 처방받고, 다시 부모님의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기운 없는 두 분이 겨우 안정을 찾으면, 냉장고를 열고 다음 병원 가는 날까지 두 분이 드실 밥과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정리해 뒀다.

엄마 아빠가 필요한 용품들을 챙기고, 장을 보고, 내가 다음번에 오는 날까지 드실 약을 아침, 점심, 저녁약을 구분해 정리해 두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는 엄마, 또 하루는 아빠.

엄마는 계속되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전신이 쇠약해져 있었고,

아빠는 자꾸만 기억과 정신이 흐려져 갔다.

엄마는 당신 몸도 성치 않은데 내가 오는 날까지 아빠를 돌보며 힘들어하셨다.


엄마 아빠에게 다녀오는 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우리 집에 도착해도, 정작 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체력은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남편이 퇴근 후 아이들을 챙겼고, 아이들은 스스로 시간을 보냈다.


삼 남매 중 오빠는 회사원이었고, 동생은 미용실을 운영했다.

영업직이라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주 보호자가 되었다.

‘결국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눌러왔다.

그러면서 내가 하던 일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아이들은 한창 돈이 많이 드는 중·고등학생이었고, 그 시기에 일을 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나를 더 조여왔다.

답답함은 온몸을 감싸고, 무력감은 점점 깊은 스트레스로 번져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밤, 입맛은 없고 잠은 자야겠고, 결국 밤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따르게 되었다.

매일 밤, 맥주 한 캔에 집에 굴러다니는 간식 몇 개를 안주 삼아 저녁을 대신하고, 그렇게 겨우 잠들곤 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조금씩 피폐해져 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하지만 그 미안함을 꺼내어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그저 모른 척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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