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일주일 중에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안 가는 날을 골라 나는 아빠의 병원 일정을 소화했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검사를 받던 날이었다.
긴 대기 시간 끝에 겨우 진료를 마치고, 아빠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세 돌아오시겠거니 생각했지만, 몇 분이 지나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좀 오래 걸리시나 보다 했다.
그러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병원 복도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화장실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아빠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30분 가까이 병원 전체를 헤맨 끝에, 한쪽 복도 끝, 벽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아빠도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아빠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기 시작했다.
“한 번씩… 머릿속이 하얘져. 그럴 땐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조용히 아빠를 안아드렸다.
“괜찮아요 아빠. 놀라지 마시고, 그런 순간엔 그냥 거기 앉아 계시면 돼요. 제가 꼭 찾으러 올 거예요.”
어릴 때 그토록 무섭고 엄했던 아빠, 누구보다 강인하고 큰 존재였던 아빠가 그날은 너무도 작고 여리게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아도 되는 날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울리는 전화벨이 내 삶을 짓눌렀다.
“TV가 안 켜진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
“밥솥이 말을 안 들어.”
“세탁기가 멈췄다”
처음엔 정말 다 고장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빠가 그 모든 것들의 사용법을 잊어버리신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잊고, 낯설고, 불안해하시며 전화를 거셨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한때는 우리 집안의 모든 기계 고장도 척척 고쳐주던 아빠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사람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어떨 땐 화도 났고, 어떨 땐 눈물이 났다.
모든 걸 나에게 알려오는 엄마 아빠가 힘겹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내색은 참아야 했다.
내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아빠의 자존심 강한 성격에 곁에 있는 아픈 엄마를 힘들게 하실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를 어린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랬다.
가족 중 누구도 하지 못하는 역할을, 나만이 할 수 있었다.
아빠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왔고, 나 역시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다.
하지만 통화만으로는 부족했다.
병원에서 한번 길을 잃은 아빠를 겪은 나는 아빠에게 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은 떨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엄마 아빠의 거실에 반려동물용 펫캠을 설치했다.
엄마 아빠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엔 일하며 틈틈이 핸드폰을 열어, 화면 속 엄마 아빠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마음의 무게가 그 작은 화면 너머에 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