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아프기 시작한 엄마와 아빠

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by 리치그로우

엄마의 암 진단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한 채 살아냈다.

병원과 엄마의 집, 검사실과 진료실, 차로 75m가 넘는 거리의 우리 집을 오가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고, 항암과 방사선을 견뎌내는 엄마를 지키는 일이 내 하루의 전부였다.

그런데, 2021년 2월 무렵부터 이상하게 아빠의 몸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 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엄마의 병간호를 나와 함께 해내던 아빠였고, 행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공공 근로도 하고 계셨으니까 체력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당연히 힘드시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피로의 차원을 넘는 변화였다.

몇 달 사이, 아빠의 몸무게가 30kg 이상 줄었고, 고열은 연일 40도를 넘겼다.

엄마가 병원에 안 가는 날을 골라 아픈 아빠를 모시고 병원이라면 이름 있는 곳은 모조리 다 찾아다녔다.

수없이 많은 검사를 해봤지만, 원인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운이 없던 아빠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밤낮없이 잠만 주무셨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나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시간 개념과 날짜 개념을 눈에 띄게 헷갈려하시는 게 느껴졌다.

40년, 50년 전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셨다.

결국 병원에서는 전신 쇠약으로 인한 섬망 증상, 초기 치매 진단을 내렸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던 분이었다.

항암 치료 중인 엄마를 나와 함께 돌보며 누구보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약 하나 챙겨 먹지 못하고, 병원조차 혼자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누군가의 도움을 거부한다는 점이었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자고 하면 “그럴 거면 그냥 나 집 나가버리련다”라고 하셨고, 병원에 가자고 하면 “이제 다 끝났다. 병원도 안 가련다. 그냥 빨리 죽고 싶다"라고 하셨다.

가족 모두가 지쳐갔다.

엄마를 돌보며 겨우겨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는데, 아빠까지 무너지니 우리 모두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빠는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하시지만 병원에서는 “이상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변비, 어지럼증, 피부 가려움, 수면장애, 눈, 코, 입안의 통증과 염증, 허벅지와 다리 통증, 등

그야말로 아빠는 눈만 뜨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 수 없는 고통과 통증들을 얘기했고 그걸 지켜보는 나 역시 매일이 고통이었다.

아빠의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져 그 어떤 말로도 아빠를 위로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분당 서울대병원, 성남시 의료원, 중앙보훈병원까지 정말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봤다.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류머티즘내과, 감염 내과, 안과, 피부과, 항문외과, 신경과, 소화기내과.

‘아프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진료과를 다 찾아다녔다.

결국 보훈병원 류머티즘내과에서 ‘다발성 류머티즘’라는 희귀 질환 진단이 내려졌고, 성남시 의료원 신경외과에서는 초기 치매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원에서도 이상하다고 했다.

치매는 이렇게 급격하게 오지 않고 서서히 진행이 되는데 아빠의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진단이 주는 안도감은 너무도 작았다.

가려움은 계속되고, 잠은 오지 않고, 아프다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타오는 약은 쌓이기만 하고, 우리는 매번 “효과가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가끔은 엄마가 암 환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리신 듯했다.

엄마를 살뜰하게 챙기던 아빠가 아픈 엄마를 힘들게 하셨다.

아빠의 계속되는 의심과 망상, 신경질이 우리 가족을 더욱 병들고 힘들게 했다.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의 고통을 매일 바라보는 일. 그것은 나를 천천히 병들게 만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면서, 나는 어느 날 문득, “이러다 나도 아플 것 같아”라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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