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날

그 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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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31일, 나는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신축은 아니지만 평수를 넓히고 인테리어도 새로 한 집이었다.

27살이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온 내게 이 집은 또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이 집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따뜻한 일상이 펼쳐질지, 커피 한 잔의 여유쯤은 누릴 수 있을지.

아이들도 어느 정도 키웠고, 한창 바쁘고 정신없던 시절을 조금은 지나왔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작’이라는 단어에는 늘 ‘끝’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기대가 커질수록, 예기치 못한 일도 더 깊이 들어오는 법이니까.


이사한 뒤 몇 주는 짐 정리로, 집들이로 정신없이 바빴다.

이 팀, 저 팀 집들이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4월 셋째 주,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인 날.

맛있게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소파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엄마가 문득 “이상하게 목에 뭐가 만져져.”라고 말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직접 만져보니 동그란 계란만 한 크기의 멍울이 느껴졌다.

‘혹시 갑상선?’

그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엔 그 정도 생각뿐이었다.


암이라는 단어는 아직 내 인생과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다니시던 분당 차병원에서 검사를 예약했고,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간 병원에서 나는 너무도 낯선 단어를 마주했다.

내가 우려했던 갑상선은 멀쩡했지만, 목에 잡히는 멍울은 다른 장기에서 전이된 암이라서 원발 부위를 찾아야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정밀검사를 시작으로 전이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2020년 5월 8일. 엄마의 나이 68세 어버이날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담낭암 4기로 보입니다. 이미 타 장기에서 원격 전이가 진행된 상태라,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항암 치료를 시작하시죠.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로 예상됩니다.”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야가 좁아지는 경험을 했다.

드라마에서 봐 온 장면들이 내 삶에 현실로 나타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병원 창밖으로 햇살이 비추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폭우 속이었다.

엄마와 내 생애 가장 잔인한 어버이날이 되었다.

그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삼 남매가 어버이날이라고 미리 예약해 둔 강원도 철원에 있는 학마음 캠핑장과 그 옆에 펜션으로 가족 모두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가 건강할 때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엄마는 평생을 고생하고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삼 남매를 키우고, 손주까지 돌보며 단 하루 마음 편히 해외여행도 못 가본 사람이었다.

이제 좀 쉬셔야겠다고, 그래서 본인도 아파트를 계약해 두고 이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파트에 살아보기’라는 소박한 소원이, 그렇게 무너질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정말 살고 싶어 하셨고, 실제로 항암 치료가 기적처럼 잘 맞았다.

눈에 띄게 줄어드는 종양에 주치의도 놀라워했다.

처음 진단을 받던 날, 남은 시간은 6개월을 예상했지만 항암과 방사선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우리는 더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암이라는 싸움은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엄마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독성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었다.

엄마는 온갖 부작용을 견뎌내면서도 늘 말했다.

“괜찮아. 조금만 쉬면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항암을 잠시 쉬기로 한 사이, 폐전이가 다시 발견되었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쓸 수 있는 항암제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분당차병원을 떠나 군포의 지샘병원으로 전원 했다.

종합병원에서 더 작은 병원인 지샘병원으로 전원 했을 때,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 항암에도 내성이 생기면… 몇 개월 내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엄마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병원 복도를 걷다 멈춰 섰다.

엄마가 보지 못하게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엄마가 잘 이겨낼 것만 같은 희망이 있었다.

아픈 가족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처음으로 절감한 날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아갔다.

그 긴 여정 속에서도, 엄마는 매 순간을 견디고 버텨냈다.

사람이 얼마나 강인해질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엄마를 통해 나는 매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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