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어도 괜찮아, 치매여도 괜찮아.
어느 날 문득, 아빠의 “밥은 먹었냐?”는 목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그놈의 “밥 먹었냐” 소리가 이제는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던 그토록 사랑했던 아빠였는데도 말이에요.
엄마와 아빠가 거의 동시에 아프기 시작했을 무렵,
부모님을 저보다 훨씬 일찍 보내드린 은희 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 꼭 녹음해 놔.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을 때가 있는데 들을 수가 없어. 이젠 목소리가 기억도 나질 않아.”
이제야 그 당부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친한 언니의 그 말 그대로, 투병 중인 엄마 아빠와의 통화를 녹음해 두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음을 틀어 듣는 그 순간, 제가 다시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아서요.
두 분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고, 그게 문득 너무 두려워졌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그 소중한 사람들을 잊게 되는 것이요.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기억을 놓치지 않고,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요.
엄마가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
아빠가 점점 낯설어지고 결국 갑자기 사라져 버렸던 어느 날,
그리고 너무 늦게 알게 된 그때는 몰랐던 이별의 징조들, 그 모든 순간을 하나씩 꺼내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온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 떠난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제가 남긴 이 기록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그 시간을 다시 꿰매어 봅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2025년 무더운 여름.
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