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반찬으로 미역줄기볶음이 나왔다. 미역줄기볶음은 나도 좋아하지만, 아빠가 살아생전에 특히 좋아하셨던 반찬이다.
요즘 들어 부쩍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이 그립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의 기억이 흐려져야 하는데, 왜인지 기억이 점점 선명해진다.
미역줄기볶음을 보고 그리움이 가슴에 차오르던 오늘 아빠를 위해 그 시절 주방에서 땀 흘리던 내 모습까지 떠올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2~3년 전, 나는 두 분의 간병을 하며 병원과 부모님의 집과 우리 집을 쉼 없이 오가며 지냈다.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이 드실 밥과 반찬을 만들어 두고 돌아오던 그 시절 아빠는 내가 만든 특별할 것도 없는 미역줄기볶음을 유난히 맛있게 드셨다.
어릴 적의 아빠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영웅이었고, 슈퍼맨이었다.
몸이 약했던 나를 살리겠다고 전국의 병원과 한의원, 각종 민간요법까지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니셨고 심지어 무당까지 찾아가 굿까지 하셨던 그 절박함과 간절함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했다.
어린 삼 남매를 키우며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 매주 가족을 데리고 캠핑을 떠나던 모습, 월급날이면 누런 봉투에 싸인 통닭을 사 오시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내 마음속엔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그 모든 것이 내 어린 시절의 평온함이자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안전한 울타리였다.
아빠는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셨고 유난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다. 감정 표현은 서툴렀지만 눈물도 정도 많았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세상은 그렇게 책임으로 지탱되는 것임을 배웠다.
결혼 전 귀가가 늦어지던 날이면, 골목 끝에 서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우리 아빠.
내가 옥상에 올라가 말없이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없이 내 옆에 앉아서 함께 노을을 바라봐 주셨던 우리 아빠.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4~50년 전의 일을 어제 일처럼 말씀하시고, 날짜와 시간을 헷갈리기 시작하셨다.
병원에 모시고 간 어느 날, 화장실에 다녀오신다던 아빠가 한참 만에 병원 어딘가에서 발견되었고, 어느 날은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 누적이나 일시적인 노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는 조심스럽게 ‘치매’라는 단어를 얘기했다.
그 두 글자는 내게 세상이 조금씩 사라지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아빠는 조금씩 모든 걸 잊어갔다.
낯선 집에 있는 사람처럼 불안해하던 아빠의 눈빛 속에서 나는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빼앗는지 배웠다.
그리고 사랑이란, 기억 속의 사람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잊혀져가는 사람을 끝까지 품어주는 일임을 알았다.
어느 겨울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아빠의 임종 소식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래 이별을 준비해왔다고 믿었는데,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빠는 나에게서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되었다는걸.
내가 아프고 힘들 때마다 “괜찮다”라고 말해주던 그 목소리처럼, 아빠는 여전히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다독이고 있다.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건 세상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이름 아빠다.
여러분의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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