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대학병원 진료를 본다는 건 그날 하루를 통째로 버린다는 뜻이다.
어제, 토요일 오전 9시 40분 소화기내과 진료 예약이 있었다. 3월에 담낭 절제술을 받은 뒤 추적 관찰 중이라, 지난주에 찍어 놓은 복부 CT 결과를 듣기 위해 오전 8시에 집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 병원은 평일보다 사람은 적었지만 교수님의 토요일 특진 덕분인지 소화기내과 앞만은 여전히 북적였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진료실 앞 대기 의자에는 이미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내 예약 시간은 9시 40분, 순서는 세 번째였다. 하지만 10시 10분이 넘어가도록 교수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기실 곳곳에서는 왜 진료가 시작되지 않느냐며 간호사들에게 항의하는 환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나 역시 점점 화가 치밀었다.
새벽부터, 혹은 전날 밤부터 병원 근처에 와서 초조하게 기다렸을 사람들도 있을 텐데, 환자와의 약속 시간에 이렇게 늦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예약 시간은 왜 있는 거요?” 따지는 환자들에게 간호사는 “교수님이 응급실에 계신지, 회진 중이신지 통화가 되지 않는다.”라며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과 화가 동시에 치밀었다. 간호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화살은 늘 가장 약한 곳을 향한다.
문득 떠올랐다. 평소 진료 때도 교수님은 환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작 3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모니터만 바라보다 처방전을 내밀고 끝,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귀찮다는 표정과 말투. 진료실을 나설 때마다 뭔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픈 우리가,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인 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이익준, 채송화, 양석형, 안정원, 김준완 교수님 같은 분들은 현실엔 정말 없는 걸까?
그분들이라면 30분, 1시간을 늦더라도 “정말 급한 일이 있었겠지”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 교수님에게는 그런 신뢰조차 생기지 않았다. 입원 중에도 회진 한 번 오지 않던 분이었으니, ‘응급실에 있다’는 말조차 믿기지 않았다.
나는 결국 오늘 느꼈다.
사람은 평상시의 태도와 말, 행동으로 이미 자신의 평판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오늘의 이 지각 사태보다 더 오래 남을 건 바로 그 교수님의 평소 태도라는 걸 말이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