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가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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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태어났지만 겨울을 무척 싫어한다. 사람들은 태어난 계절을 닮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추위를 많이 타서인지 겨울만 되면 몸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게을러지고 마음의 에너지까지 얼어붙어 사계절 중 가장 무기력해진다.

겨울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묵직한 침체감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첫눈을 반가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2023년 12월.

원래 좋아하지도 않던 겨울이, 그해에는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말 한마디가 나는 지금도 또렷하다.

“아버님께서… 오늘 새벽에…”

몇 년 동안 애달프게 바라만 보았던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너무 사랑했던 아빠가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홀로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빠는 평생 가족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늘 자신보다 엄마와 우리를 먼저 챙겼고, 좋은 건 하나라도 남겨두고 양보하던 분이었다.

그런 아빠의 마지막 길조차도 참 아빠다웠다. 1년 3개월 전 엄마의 장례식은 많은 지인들의 위로 속에 조금은 따뜻하게 치러졌는데, 아빠가 떠난 날은 유난히 추웠고 폭설까지 내려 찾아오는 발걸음도 뜸했다. 엄마의 마지막 날이 높고 푸른 맑게 갠 가을 하늘 아래였다면 아빠의 마지막 날은 폭설로 인해 발걸음조차 쉽게 닿기 어려운 날이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마저도 엄마에게 다 양보하고 떠나는 것 같아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서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마치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엄마 먼저, 너희 먼저”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아빠의 영정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도 얼마나 애가 타게 울었던지 눈물에 젖은 얼굴로 깨어난 새벽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이렇게 생생한 아픔이구나, 꿈에서조차도 놓아주지 않는 그리움이구나.

그리움에 사무친다는 말. 예전에는 책 속에서나, 누군가의 이야기에서만 보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라기보다 체득했다고 해야 할까.

숨을 들이쉬면 아빠의 빈자리가 폐 속까지 차오르고, 숨을 내쉬면 그리움이 온몸을 따라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 그리움이란 게 이렇게 물처럼 번지는 것이었다.

지금도 누군가 ‘아빠’라는 단어만 꺼내도, 아니, 내가 마음속으로 그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1분이 채 되기 전에 눈물이 차오른다. 내 안에 떨어진 작은 눈물 버튼 하나가 ‘아빠’라는 이름을 닿기만 하면 자동으로 눌리는 것 같다. 언제쯤 이 눈물이 그칠까, 나아질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눈물이 사라져 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눈물은 아빠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온기 같아서.

아빠를 잃은 슬픔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움은 낡아지지 않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자라난다.

겨울을 싫어하던 나는 아빠를 떠나보낸 이후 겨울이 더욱 낯설고 차갑게 느껴진다. 길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도 아빠 생각이 나고, 눈이 내리는 풍경에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시에 겨울 속 어딘가에는 아빠의 잔향이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계절이기 때문일까. 그 차가운 바람 속에 어딘가 아빠의 숨결이 있고, 하얗게 쌓인 눈 속에 아빠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받아들인다. 겨울은 나에게 단순히 추운 계절이 아니라, 아빠를 품고 있는 계절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여진히 그립고 여전히 슬프지만 언젠가 이 계절을 제대로 바라볼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아빠가 남기고 간 사랑이 이 차가운 계절을 조금씩 녹여줄 거라고.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속으로 아빠를 불러본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눈가가 금세 뜨거워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리움 속에서 아빠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속삭인다.

아빠, 정말 많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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