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의 의미는 살아낸 날들이다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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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매년 구정이 오기 전 딱 일주일 전쯤에 있었다. 음력 생일이다 보니 해마다 날짜는 달라졌고 부모님은 늘 미역국을 끓여주셨지만 생일은 늘 명절과 겨울방학 사이 어딘가에 묻혀버리곤 했다. 성격상 관심받는 일을 유난히도 불편해하던 내게 생일은 축하보다 번거로움에 가까운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챙겨주는 생일은 부담스러웠고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릴 적 생일은 미역국 냄새와 함께 하루쯤은 세상의 중심이 된 듯했다. 그때의 나는 생일이 정말 특별한 날인지 잘 알지 못했다. 가족들과 그냥 밥 한 끼 먹으면 되지 생각했던 거 같다.


시간이 흐르며 생일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축하 메시지는 점점 짧아졌다. 대신 그 자리에 이런 생각이 남았다. 이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사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품고 있는 마음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가능성 같은 것들. 생일은 더 이상 무엇을 받는 날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그러던 내가 부모님을 떠나보낸 이후, 생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부모님이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 처음 맞이한 2년 전, 2024년 1월의 생일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두 분이 모두 계시지 않는 생일이 이렇게까지 슬프고 서러울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그날의 생일은 기쁨이 아니라 상실에 가까웠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데 굳이 음력 생일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음력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아이들을 위해 날짜를 헷갈리지 않게 하려고 나의 생일을 주민등록상 생일인 1월 11일로 바꾸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날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날로 살고 싶어졌다.



작년부터 나는 내 생일을 내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축하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도 더 이상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올해는 일부러 내 생일에 맞춰 가족 여행을 떠난다. 더 이상 생일에 슬퍼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것이다.


어제는 내 카톡 단톡방에 '미녀 삼총사'라고 저장된 나와 가장 친한 사람들과 작은 생일파티도 열었다. 서른 초반에 만난 우리가 이제는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한 언니를 제외하고는 부모님 네 분이 모두 살아 계셨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부모님 네 분의 장례를 모두 치렀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 이제 우리의 생일을 부모님이 더 이상 챙겨줄 수 없기에 우리가 서로의 생일을 더 챙겨야 한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매년 서로의 생일마다 작은 파티를 연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듯이.



어쩌면 생일의 진짜 의미는 ‘태어난 날’이 아니라 ‘살아낸 날들’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날 위에 오늘이 얹혀 있다는 걸 인정하는 날. “그래,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도장 같은 것. 이제 나는 생일에 큰 소원을 빌지 않는다.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좋은 생각과 따뜻한 기억들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본다.


이 하루가 또 하나의 ‘살아낸 날’로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일은 여전히 특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나를 지나치지 않는 날이라면 그걸로 생일은 제 몫을 다한 셈이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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