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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보를 걷어

by vakejun


짐숭2에게 곧 가리라!

라고 말은 해놨지만 불확실했다.

상황이나 시간 이것저것 여건이 여의치 않아 머뭇거렸다.


그래도 연휴 때 얼굴이라도 보고 보내서 좋았어.

그때 이야기하면서 느꼈다.


아.. 이 새끼랑 매일 한두 시간 떠들다 보면 물 위를 걷는 새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물론 저마다의 사정과 상황은 각 자신에게 엄하게, 때론 무심하게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너의 대처능력은 언제 들어도 신기하기만 하다.

너는 분명 사람이 아님이 틀림없다.


맛난 거 먹고 떠들고 진지하거나 시시껄렁하게.

식단과 운동으로 얇아진 짐숭을 보며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처음으로 보는 툭 튀어나온 짐숭의 손 등, 본인도 처음 본다는 피셜.

말캉한 손바닥(다행이다 여긴 그대로라)을 주물주물 거리며 우리는 짐숭을 짐숭만지듯 만졌다.




표를 끊고 위챗을 보냈다.


옷걸이를 준비하라고.



이미 상해의 명소는 충분히 둘러봤다.

여행을 가면 늘 원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시내 가장 높은 테라스에서 밤의 풍경을 보는 것이다.

대륙의 스케일은 볼 만하다.



어차피 우리는 중알못에다 L과 R, F와 P발음도 구분하지 않으면 굴욕을 당하는 매우 진화된 곳을 다녀본 결과 전적으로 상해 짐숭에게 의지.

모든 주문과 계산은 휴대폰으로 가능한 그곳에서 우리는 국제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말 잘 듣는 착한 관광객(?)이 되어야 한다.


중국어를 배우려 하루에 한 문장씩 시작했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우리는 죽자고 아아만 먹어야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매우 소소하다.


소파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온다는 하루키사마를 기다렸다가 냅다 안는 것,

짐숭2가 구워주는 빵을 먹고 근처의 카페에 가 카페인을 넣어주고 저녁이 되면 동네 산책을 하며 다음 날이 되면 전동자전거를 타고 찜해 둔 맛집을 가는 것.

남편님이 오면 허궈를 먹으며 우리의 공통분모인 쇼핑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해야지.




떠나는 건 언제나 좋다.

가기 직전까지 난 모든 것을 계획한다.

이것 역시 훌륭한 도파민이다.

가서 입게 될 모든 착장을 시뮬 해가며 적어놓고 탈락시키길 반복, 베스트만을 골라 놓는다.

이 얼마나 황홀한 계획인가!


필요한 소지품이 많이 드는 몸이라 챙길 것도 많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직접 드로잉(이랄 것도 없이 러프하기만)한 그림보다 주로 여행에서 남긴 특별한 장소나 느낌들을 기록한 사진들이 제목의 배경이 되는데 이번 여행은 작정하고 배경에 쓸 만한 사진을 많이 남겨야지-라는 나답지 않은 생각이 들어 기특하다.


4월에 가는 여행은 아마 처음?

여기보다 조금은 따뜻한 온도의 상해라 무얼 입을지 벌써부터 신나는 고민이다.


더플백부터 준비해야겠다.

아웅 신나!






3월 10일 작성..

13일로 넘어가는 한국 자정이 넘은 시간,

하루키는 고양이 별로 갔다.


미리 못 가서 미안하다. 늦어서 미안.

우리 짐숭 돌보고 옆에 있어줘서 서로에게 너무나 힘이 되어주어 고마웠어.

습식사료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내심 걱정했지만

너는 잘 버텨주었고 여전한 미모로 사람들을 홀렸다.

세상 모든 고양이를 통틀어 너만 한 인물이 없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고 예쁜,

예쁘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미묘였던 너는

조금은 아파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할게.

아픈 건 어려워. 서로에게 힘듦을 덜어주려

네가 내린 결정에 우리는 그저 따를게.

너무나 행복한 시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이름처럼 봄에 갔구나. 아직은 봄이 이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름이란 이름을 지어줄걸.

가을에 맞게 지어줄걸.

더 따뜻한 봄 맞으러 갔구나.

짐숭은 우리가 가서 안아줄게.

돌아보지 말고 잘 가. 안녕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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