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by vakejun


고요하기 그지없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딘가에 불안이 잠식되어 있다.

이러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 아닌가?

안전 불감증 같은 거.

불필요한 망상이 가져다주는 반갑지 않은 공포의식 그런 거.


상상과 생각, 행동의 실현은 한 끗 차이이나 무엇이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그게 불안한 거지 내가.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던 어리석은 내가 제일 잘났다고 믿었던 때, 그저 특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온몸에 디자이너의 피가 들끓던 어딜 가도 태가 나던 때, 싫은 것보다 좋은 것들을 헤아리기 바쁘다 보니 지키고 싶더라.


아, 이대로만 가자.

행복하다. 이대로만 간다면.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신체 건강하고, 부모님 계시고, 좋은 인연, 모자라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이상'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행복하다'를 연발했다.


하나씩 뺏겼다.


모자라게 살아보니 남들이 갖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안 하던 비교짓거리를 했다.

무엇이 모자란가?

나와 비슷한데 저 사람은 있고 왜 나는 없는가!

바보 같은 짓거리에 시간을 버리고 보니 꼬락서니 형편없어 때려치웠다.



하나씩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쓸데없더라도 습관이 생기면 악착같이 하는 버릇이 있다. 가진 것 중 유일 꾸준하고 이쁜 버릇이다.


자고 일어나면 침대이불부터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원래부터 그래왔던 저 습관에 대해 누군가는 저 행동에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했다.

시작을 아주 잘하고 있었잖아?


3개월마다 한 번씩 있는 정기검진을 앞두고 체중이 많이 빠지지 않은 건에 대해 우울하지만 약간의 변화에 웃는다.

늘 숫자에 울고 웃었더랬다.

이제는 결과가 나빠도 웃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결과에 뭐가 돼도 이보다 나을게 아닌가-라는 웃긴 추론이다.


인바디 측정으로 인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래 결국은 움직였다.

미룰까요?라는 교수님 말에 아니요- 했다.

매도 일찍 맞는 편이 낫다.


타투를 하고 2주간 정해진 시간마다 열심히 연고를 발랐다. 관리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정해진 루틴이 생기면 지독하게 한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가정의 달이라 본가에 갈 예정, 엄마 아들이 새로 생긴 타투를 보고 뭐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 역시 일찍 맞아보자.

여름은 편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오늘은 지극히 평범해도 괜찮으니 안전 불감증일랑 치워버리고 일찍 출근한 보상으로 달콤한 낮잠을 자볼까?


어제도 안녕했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했으면! 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무슨 일은 일어나고 만다.

좋든 싫든, 좋은 일이건 아니건 간에 사방에 깔린 불안과 행복을 줍줍 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또 다른 좋은 습관이 날 움직이게 할지도 모른다.


좋은 계기를 만들어보자.

동기는 에너지와 같아서 모아두면 마일리지처럼 쓸 수 있다.


오늘도 무사 통과하는 평범한 날 되시길.




+Terry Callier-Ordinary Joe 곡을 스페샬하게 추천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