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vakejun


드럼을 배우고 싶었다.

피아노는 부럽지만 너무 고상해 보이고

왠지 신나게 두들기고 나면 들끓는 화도 좀 뚜드려 맞고 잠잠해지지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스틱을 돌리는 기술 그거 좀 멋있다.

중1 음악 중간고사, 평균점수를 말아먹은 우리 반은 본보기로 작은 북채로 손등을 맞았다.

아, 음악선생님 괜찮았는데 사람 겪어봐야 안다.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학교에 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났다! 고밖에 볼 수 없는 미친 애가 하나 있었다.

대충 그리는가 싶더니 뚝딱이다. 공부는 못했지만 그림 실력 하나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디자인으로 빠지려 했는지 끄적거리는 내 연습장의 스케치를 보더니 오! 하고 간다. 나중엔 후회한다. 어릴 적부터 늘 해왔던 그림을 그리던 것을.

기왕 하는 노가다였다면 건축으로 빠질걸..


춤을 잘 추고 싶었다.

세상 멋있다. 그렇지만 알았다. 요가 필라테스 발레핏 다 해봤지만 춤만큼은 소질이 없다.

몸치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다.

어릴 때 하던 그런 물놀이 말고, 진짜 수영.

올림픽이 열리면 다른 종목은 별 관심 없어도 체조나 피겨, 싱크로나이즈드(아티스틱 스위밍), 수영은 챙겨보곤 했다. 엄마는 올림픽이 시작되면 일일드라마를 볼 수 없어 매우 지루해하신다.


수어를 배우고 싶었다.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전하려는 말과 그들이 전하려는 것이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은 조금 억울한 형태가 있으나 찾아보면 분명 쓸만한 도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같은 맥락으로 <목소리 기부>역시 하고 싶었다. 너나 잘 살아!라는 일상이 하고 싶은 것들을 꾹꾹 짓밟아서 늘 생각만 하고 만다.


그 외, 사격이라던지? 비싸다고 들었다.

바리스타라던지, 역시 커피와 라면은 남이 해주는 게 최고다.

복싱이라던지 호신술? 내 몸 하난 지키고 정의 구현을 위해서.






배우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들이 더 많고 놓치고 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지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없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러러보지 말고 현재에 만족을 느끼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처럼 물욕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


그래서 조금 재미지고 약간은 꾸준한 것에 그래도 아는 것들에게서 도파민을 찾았다.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또 우습다.


여름을 잘 나기 위함을 배우는 중이다.

길어질 것 같던 구라쟁이 장마는 끝이 났고 이제 폭염과 열대야만 남았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날이며 다음 주가 정기검진이므로 홀케이크 대신 조각케이크로 대신해야겠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아직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헤드셋을 타고 나오는 노래가 "I'll go, I'll go"한다.

하거나, 가거나!

이런 운명적인 어떤 순간을 좋아한다.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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