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탱화

by vakejun


조치원 홍대캠퍼스 버스정거장.

실습이랍시고 남들은 노는 여름방학을 언니집에 머물며 청주에서 조치원까지 출, 퇴근을 했다.

부교수님의 작업실이 마침 거기에 있었고 언니는 청주에 살고 있었단 게 우연이라면 우연.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 동그란 두상을 드러낸 까까머리 보헤미안 여자가 나타났다.

생김새도 차림새도 보통은 아니네-하고 있었다.

귀에는 Linkin Park의 음악이 흐르고 정거장으로 점점 걸어오는 여자에게선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 여자 나에게 말을 건다.

이 학교 다니냐고. 아뇨, 실습이요. 했다.

전 이 학교 다녀요. 여기 얘들 재수 없죠?


뭐지 이 신박한 소개는?


방학이라 저는 딱히 부딪힐 일이 없어서..

아, 사자머리를 한 조교 언니는 좀 멋있더라.


그리고 그 여자는 내 번호를 물었다.

친구가 없으니 가끔 연락을 해도 되겠냐고.

나도 친구 없긴 마찬가지라 그냥 그러자 했다.


그러고선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나보다 두세 살이 많았고, 평범한 이름과는 다르게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고, 본인의 학벌에 대해 으스대지 않으며 겉멋 없는 사람.


청주의 시내에서 보자라고 연락이 왔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내게 말을 걸고 친구를 하자고 했는지에 대해.

내가 아톰다리라서 그랬다고 한다.

이유가... 어이없다.


카페를 나와 좁은 거리를 걸으며 뭐 하나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을 하라고 했다.

딱히 필요한 게 없어서 그냥 옆에 보이는 공 CD꾸러미 하나를 사달라고 했다.

조금 의외라는 웃음을 짓더니 몇 천 원을 내주고 나는 선물 아닌 선물을 받았다.


가끔의 안부 문자, 그리고 여름이 가고 졸업을 하고 나는 서울에 왔다.

첫 직장, 당시 사용하던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담백한 안부인사만이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언니는 내가 일하는 연신내까지 굳이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혼자 먹는 점심인데 잘 됐다.

나갔더니 사람 하나를 붙이고 왔다.

아, 난 첫인상에 많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구나.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시작된 친구라는 사람의 이상한 이야기.

조상신에게 제를 드려라.

한 200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잘 풀린다나?


감사하며 물을 마셔야 된다,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아느냐 라는 말을 할 때 대강 눈치는 깠다만

대놓고 내게 강요하는 바가 없어 가만 뒀더니 행동하는 사람을 데려왔구나.


뒤늦은 메시지로 언니는 불쾌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제는 안 지낼 거니까.


그렇게 담백하던 안부인사는 몇 번 이어졌고 그때마다 언니의 거처는 옮겨져 있었다.

육지 어딘가의 절에서 탱화를 그리고 있다, 학교는 그만뒀다.

마지막은 제주의 어느 사찰이라고 했다.


미대까지 간 좋은 그림실력으로 그리 갔구나.


자신은 자신의 학벌이 싫고 부모님이 거는 기대에 부응하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매번 절이 싫어 떠나는 중의 입장이었는데, 그 언니.. 진짜 절에 들어간 수도자가 되어버리고 만 걸까.


가끔은 생각이 난다.

사심 없이 접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

물론 아예 사심이 없었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렇지만 사기라도 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언니?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에 사회 초년생 데리고 말이다.


더 이상 메신저는 하지 않는다.

서로의 연락처는 알 길이 없다.

그 언니의 이름은 알지만 성이 뭐였는지도 가물하다.

가물했던 그 언니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그냥 그림 그리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