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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더러웠어 2

by vakejun


결론은, 이제부터 파지는 디렉트로 내가 준다.

넌 내가 주는 작업만 쳐내, 박대리는 내가 커버칠게.


멋있는 실장이다.


나도 이제 제대로 된 작업을, 내 손으로 만든 앨범을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안 갔다.


그날도 실장님은 저녁 먹을 사람 거수를 체크했고 당연한 듯 '저는 빠질게요' 했지만 처음 보는 불같은 화에 '나와! 젤 어린것들이 걸핏하면 말을 안 들어!'

따라 나갔다. 박대리를 제외하고.

실장님은 조용히 타일렀다. 맨날 박대리 비위 맞추느라 힘들지 않냐고.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라신다.

이 바닥에서 보기 힘든 배려다.


그렇게 실장님의 눈에 찬 내가 큰 건수를 맡고 일을 쳐내자 위기감을 느꼈나? 실장님 말대로였다.

쉽지 않은 3년의 시간을 버틴 자신은 그게 무엇이든 결코 쉽게 알려주지 않을 거다! 를 고수하더니 그것도 통하지 않자 갑자기 중학생놀이를 시작한다.

매국노에서 일진으로 컨셉을 바꾼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 여자들의 입김과 텃새놀이는 이제 질린다. 일은 재미있어도 감정과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화가 승천한다.


간지고 나발이고 더 이상 저 인간이랑은 못해먹겠다!

새벽, 저녁도 못 먹고 일만 한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전화를 한다.


엄마 아빠에게 다 일러바친다.

오늘도 박대리년이 나한테 덤탱이를 씌웠어!

오늘도 박대리가 나한테!!

엄마 아빠는 그냥 관두라 하신다.

그 말이 듣고 싶어 전활 한걸수도 있다.


일적으로 커리어를 쌓기는 좋은 회사다.

복지도 나름 괜찮았다.

중간중간 보너스처럼 있는 쇼케이스에서는 'staff'라는 목걸이를 걸고 공연 앞자리에서 스탠딩으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러나 나는 부처님이 아니다.

스님도 아니다. 절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참는 것에 슬슬 한계에 다다르자 실장님께 직접 말씀드렸다. 도저히 박대리와는 일 못 하겠다고.

뜯어말리셨다. 손도 빠르고 일머리가 있으니 금방이면 박대리의 터치 없이 할 수 있을 거다.

조금만 참으면 안 되겠냐?


안 되겠다고 했다. 이미 식식대는 흥분을 잠재울 수 없다는 걸 안 실장님은 곧 명절인데 떡값이라도 받고 관두라 신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공손하게 말씀드리는데 박대리가 나타났다.

대체 왜 네가 화가 난건지를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자기 때문에 관둔다는 부하직원에게 본인이 더 억울한 처세술을 쓰는 건 뭔 경우인지..

하지 마! 네가 왜 울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아.. 내 이름을 부르며 자기가 어떻게 했는데 식의 연기를 시작한다. 실장님은 말없이 자리를 떠났고 더 이상 그 놀음, 장단에 발맞춰 주기에 빡이쳤던 나는 옆에 있던 책상을 발로 차고 그에 맞는 대사를 해주기로 한다.

"길 가다 마주치지 마요. 박대리님."


챙길 것 없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뒤통수에 대고 뭐라 울며 불며 고상한(?) 욕을 하는 것 같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면상을 가만둘 자신이 없어서였다.

통쾌했지만 분한 퇴사였다.


막상 갈 데도 없는 이른 시간, 바로 시작하는 아무 영화를 보며 화를 잠재우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들어가기가 왠지 싫다.

무작정 동네의 정신과를 찾아갔다.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해방감보다는 상실감과 패배감이 섞인 내게 해줄 수 있는 처방은 그뿐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날 하늘은 울적했다.


잊고 싶은 건 죽어라 애를 쓰는데 박대리의 이름도 자체적으로 지워버렸다.

얼굴은 몽타주급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주치면 진짜 가만 안 둘 것 같았으므로.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마음먹었다.

내가 '사수'가 되면 절대 저런 짓은 안 해!


나중 나를 거쳐간 디자이너들은 말했다.

좋은 사수를 만나 운이 좋았다고.


안타까운 건지 다행인지 길 가다 박대리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그 여잔 따귀를 피하고 난 법망을 피했다.

나름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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