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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게 뭔데?

by vakejun


20대 성인이자 사회인, 커피를 마실 줄 몰랐다.

아메리카노? 그 쓴걸 뭔 맛으로 먹냐..

라떼? 우유도 못 먹는데 그걸 왜 돈 주고 마시는지..


어른이 덜 됐다-는 짐숭들의 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 두 펌프를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묘한 오기와 발동이 걸려 마시고 만다.

그러다 아메리카노의 진가를 발견하고 시럽의 애입맛을 졸업한다.


우유 따위 배 아프고 마는 그거 안 마셔!

그린티 라떼에 빠져 일반 커피보다 비싼 그것을 돈 주고 사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우유를 마시면 안 먹는 거보다 낫지 않겠어?


묵직한 바디감이 어쩌고 견과류 향이, 산미가, 추출 방식이~

전문지식 하나 없이 그저 얼음이 좋아서 커피를 마셨다.


'얼죽아'라고 하는 그 흔한 사람 중 하나.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수했다.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 요량으로 내겐 버릴 게 하나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자주 가던 카페 스텝분은 미리 선주문을 건네오신다.

"오늘도 샷추가, 얼음 많이, 물양 적게 아이스아메리카노 맞으시죠?"

뿌듯하다.


중학교 때부터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 게 밥보다 좋았다.

그저 좋아서 먹었을 뿐인데 몸이 보내는 적신호였던 거다.

철결핍성빈혈의 부작용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약을 몇 년 몇 번에 걸쳐 먹기 시작하자 담당의 말대로 곳간에 누적이 되었는지 거짓말같이 얼음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진작 알았더라면 임플란트 정도는 면했을 텐데.

아깝다.


커피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일의 능률을 올리는 부스터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셨고 커피가 있어야 일의 능률이 오르고 진행도 수월했다.


만남도, 수다도, 새로운 장소도, 외출의 목적도 모든 것은 커피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커피가 좋아도 에스프레소에는 큰 뜻이 없었다.

뭐든 장담하면 안 된다. 인간은 장담하는 순간 미래에 후회하는 전환모드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에스프레소에 입맛을 내주었다.

아, 이거 묘하다.

진정 '어른의 커피'란 이런 것!

나 커피 좀 마실 줄 아네-


그렇다면 서울의 모든 에스프레소 바라는 커피바는 모조리 도전을 해보자!

운 좋게(?) 자주 가는 바의 사장님을 마주친다.

그렇다면 알려드려야지!

여기서 에스프레소를 텄다!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노라! 단연 이곳이 최고다!

사장님의 너스레와 외향적인 감사인사가 부담스러웠지만 더 번창하고 계신 거 보니 에스프레소 하나만큼은 서울 최고다.


나도 카페를 차린다면 꿈이 있긴 한데..

라떼 한잔을 38,000원에 파는 것이다.

그만한 퀄리티를 뽑아낼 자신과 부심이 어처구니없는 가격을 만들었다.

지나가다 어처구니없는 라떼를 만난다면, 앞니 플러팅을 해 주심이 어떨는지..

내향적이라 조용히 한 잔 더 드릴 수 있는데..



그동안 고생한 모카포트는 모셔두고 신문물을 들였다. 커피머신이 생기면 외부에서 커피를 안마실 줄 알았다.

아니다.


더 좋은 카페! 내가 마셔보지 않은 새로운 커피!

여기 시그니처커피가, 바리스타가 그렇게 유명하다며? 하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다.

내 병이 떠안아 준 봉인된 달콤한 간식 따위는(추가 주사를 맞기 싫어서) 저혈일 때나 주어지는 그것인데 커피는 다르다. 언제든 원하면 마실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이다.


이 정도면 커피는 습관적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되도록 디카프를 마신다.

카페인 과다섭취 방지차원에서..

그럼에도 불구, 가까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는다.

커피와 라면은 남이 해주는 것이 진리이므로.


예전 자주 가던 그곳의 매니저님은 얼굴을 알아보시고 하루에 몇 번이나 찾는 카페인 중독자에게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다.


"하루에 몇 잔을 마시는 거예요? 괜찮아요?"


어지간히 마시긴 했나 보다.

매니저님, 저 아직 그러고 살아요.


수행과정을 거치듯 커피를 찾아다닌 지 오래..

이제는 내 취향의 커피가 무엇인지 구별하게 됐다.

시간과 돈 투자, 발품의 보상이었다.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에스프레소 모험은 떠나지 않는다.

도장 깨기는 끝났다.

시즌 음료가 나오면 찾아가는 곳이 있고

분위기를 따질 때 가는 곳이 생겼고

비 올 때 떠오르는 곳이 있으며

순수하게 커피만 마시고 오는 곳이,

그리고 이 글을 완성하게 만드는 곳이

다들 잘 자리 잡고 있다.


정착이 주는 안정감이다.


팁을 말하자면,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 목을 '탁' 치는 타격감이 온다면

그것은 실패예요-


오늘은 인도네시아 구능 레이서 푸어오버 추출이다.

원두 이름이 괜히 능글맞고 아이스에 제격이다.



오늘의 당신에게도 근사한 커피 한잔이 친구 그 이상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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