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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불행의 시작이라고 해. 1

by vakejun


2012년 10월 22일, 밤.

원인도 모르는 낯선 이름의 병이 다가와 나랑 함께 하자고 했다.


몹시도 목이 말랐다.

안약이 한없이 써 계속해서 물이 당기는 줄 알았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딱히 하는 거 없이 가만 앉아 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머리를 써서 그런게지, 골머리를 써서 그런게지..끊임없이 무언갈 입에 넣어줬다.

하도 물을 마셔선지 배출도 많았다.


컵라면 하나를 다 못 먹는 내가 안 먹던 캔콜라를 곁들여가며 뚝딱 해치우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냉동고 문을 연다. 아이스크림콘을 먹었다.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도 지났는데 그런 내가 신기했다.

네게 말했다. 청소를 하며 아무렇지 않게.


"나 요즘 근데 너무 잘 먹어. 돌아서면 허기가 져. 이상한 건 그게 내 몸에 누적되는 기분이 안 들어."


바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병원에 가보잔다.

조금 쎄한 기분이 살갗에 와닿았다.

나더러 당뇨 전조증상과 똑같단다.


다음 날 곧바로 내과를 찾았다.

힘들게 공복을 유지해서 갔는데 결과가 300 얼마

피검사를 맡기고 며칠 후,


큰 병원을 가보랜다.


손에 쥐어주는 소견서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보는 사람이 있건 말건 소리 나게 울어재꼈다.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던 때였다.

건물도

사람도

내 상황도.

안약을 넣어도 흐릿한 인상과 건물의 아웃라인은 선명해지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디스크 수술 후의 경과를 보러 엄마가 서울로 오셨다.

같은 건물의 내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설명하니 인슐린주사를 투여해 주셨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의 팔을 붙잡고 창문에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엄마 나 보여! 저게 보여!"

아.. 기쁨도 잠시, 나에게 뭔가가 오리라는 것 또한 보였다.


계단 3칸을 오르기가 버거웠다.

먹는 것을 끊기가 어려웠다.

버티기가 힘이 들었으므로.

살이 쭉쭉 빠졌다.

난 그때 내 쇄골뼈와 무릎뼈를 처음 봤다.


눈에 안 보이는 모든 것이 뿌연 일상은 다가 올 무언가만큼 희미한 두려움 그 자체였다.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고야 말았다. 내분비 내과였다.

저혈당쇼크로 실려오기 딱 직전이라고 했다.

우선은 혈당 안정이 목표이며 병명을 파악하는 검사에 치중하려면 그 프로그램에 내가 가담해야 한단다.

2인실 뿐이었다.

가족들에겐 별일 아니니 아무도 오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마치고 이틀 째 되는 날 밤.

처음 보는 담당 교수님이 찾아와 말해주었다.


"안타깝게도 제1형 당뇨병으로 판정되었습니다. 보기 싫으셔도 평생 저 봐야 해요."


아.. 날벼락.


'싫어요!'

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끝내 삼키고 그대로 간이침대에 머리를 처박았다.

소리 내 울지도 못했다.


먼저 계셨던 환자분은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내과 병동은 이런 곳인가.. 나는 췌장암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얇은 커튼을 사이로 두고 비명이 들렸다.

새로 온 옆칸의 환자였다.

이미 지방에서 '안됩니다. 더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온 환자라고..

흰머리가 희끗한, 고단한 세월이 담긴 미소로 그의 언니라는 분은 자기와 동생을 소개했다.

동시에 차분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여기저기 양해를 구하느라 바빴다.


소리 죽여 울었다.

흐르는 눈물이 감당이 안되자, 네가 나를 데리고 밖을 나갔다.

나도 원하던 바였다.

입원실 그 옆에선 '넌 평생 인슐린만 맞으면 되는 병이지만 난 아니라고!' 말할 것만 같아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것이다.


치과대 병원 앞 벤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펑펑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병판정에 내가 왜?라는 의문보다

바로 거기, 그 벤치에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 엄청나게 울어댔다.

그 밤에도 지나가는 이는 있었고 장소 탓일까,

내 어깨를 토닥이는 보호자와 꺼이꺼이 거리는 환자복의 사람에게 무어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일의 프로그램 안에는 정해진 식단과 인슐린 주사요법, 탄수화물 계산법, 1형 당뇨 교육 등이 병행됐다.

내가 왜 이 교육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심사가 꼬였다.

네가 모든 것을 떠안아주었다.

물론 내 피하지방에 투여하는 주사법은 직접 하고야 말았지만..

어쩔 텐가. 그 마저도 안 하면 죽는다는데..


나와 평생 볼 거란 교수님은 안식일 2년을 제외하고 그 약속을 지켜주고 계신다.

나더러 모범생이라고 했다.

난 교수님을 '최다니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분은 모르고 있다)

예전 어느 시트콤에 나왔던 의사 캐릭터-그 특유의 시니컬함이 영락없이 닮았다.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다닌다.

내가 어떻게 될까 불안했던 너는 정신과 연계를 부탁했다.

7년째 다니고 있다.

1년에 한 번 안과검진도 받고 있다.

번외로 가슴 섬유선종 제거 수술을 5번 한지라 추적검사도 하고 있다.


그 예전 어느 날엔가 새벽 3~4시쯤 퇴근하면서 생각했다.

일 안 하고 편하게 살 방법 없나..


프리랜서로 독립을 했다.

2년 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찾아온 병.


그리고 다음 해 8월,

아빠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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