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퇴사가 처음이라
7월 초, 퇴사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완벽한 백수가 됐다. 회사를 벗어났다는 기쁨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땐 몰랐다. 여름은 퇴사하기 정말 별로인 계절이라는 것을.
분명 나는 서른 번의 여름을 경험했다. 왜 잊고 있었을까. 7, 8월의 대한민국은 불타는 땅덩이인데.
7월 첫째 주에 신나게 퇴사를 하고, 그다음 날부터 3일간 고향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과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고, 엄마와 월요일 점심을 먹은 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주말에는 보기 힘든 텅텅 빈 기차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평일 9 to 6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백수의 특권. 그제야 내가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라는 게 실감 났다.
평일의 용산역은 주말만큼 붐비지 않았다. 비교적 쾌적했고, 화장실의 긴 줄도 없었다. 아, 너무 행복하다.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 역시 여유로운 편이었다. 항상 몇 정거장을 지나야 간신히 앉을 수 있었는데, 용산역에서부터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양 옆자리가 비어 있는 여유로움. 항상 지옥철에 고통받는 직장인이었는데, 이 쾌적함은 뭐란 말인가.
그렇게 행복에 가득 차 1시간가량 달리니 집 근처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얼굴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묵직하면서 후텁지근한 바람. 백수의 특권에 가려져 잠시 잊고 있었다. 아, 지금 여름이지...
이제야 자각했다. 지금은 여름이고, 나는 처음 경험해 보는 백수 생활에 한껏 들떠있는 초보 백수였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해, 가보고 싶은 곳을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강아지와 함께 한반도 테두리를 따라 여행하는 로드 트립을 꿈꿨고, 친구들과 한강 피크닉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날씨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혼자 놀러 가려하면 비가 쏟아졌고, 강아지와 나가려 하면 30도가 넘는 폭염이었다. 엄청난 습도는 기본. 나가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날씨를 체크했고, "날씨 진짜 왜 이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느덧 퇴사한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이 찜통더위를 요리조리 피해 최대한 백수 생활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을에 퇴사했더라면', '날씨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이라는 생각들이 아쉬움을 만들어낸다. 퇴사에도 계절이 있다. 지금 당장 회사를 뛰쳐나오고 싶더라도, 한 번 더 고민해 보시길. 여름 액티비티를 좋아하거나, 땀 뻘뻘 흘려도 퇴사가 더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두 달 더 참았다가 꼭 가을에 퇴사하시길.
백수가 처음이라 몰랐다. 하지만 퇴사의 계절을 잘못 선택한 이 경험은 나중에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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