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 Aug 05. 2024

퇴사 후 계획이요?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2024년 5월, 4년 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여느 때와 다를 거 없는 5월의 마지막 날, 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는 내 결심을 전했다. 그녀는 내가 퇴사 이야기를 꺼낼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팀장은 나에게 퇴사 사유를 물었다.


"하고 싶은 걸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 대답이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4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회사에 큰 불만 드러내지 않고 잘 다니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꽤 애정도 갖고 있었다. 내 일은 충실하게 해냈고,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일에 대한 애정이 내가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다.


5년 전, 노트북 받침대를 두고 와서 과자 박스에 올려두고 기사 쓰기


2017년 3월, 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4살부터 꿈꿨던 직업이었기에 모든 게 궁금했고 즐거웠다. 데스크에 멘탈 터지게 털려도 하룻밤 지나면 괜찮아졌다. 내가 꿈꿨던 일이니까. 하지만 '이건 내 평생의 꿈이었으니까' 빨도 오래가진 못했다. 아무리 꿈이었대도 남의 돈 벌기가 쉬운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탈탈 털린 내 마음을 달래줄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바로 취미 생활. 몸과 마음이 지치면 영화를 보거나 친구와 맛집 투어를 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나가 좋아하는 사진도 잔뜩 찍었다. 우울한 날이면 강아지와 함께 집 앞 공원을 뛰었다. 취미 생활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고,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첫 회사에서 3년을 보내고 현재 회사로 이직했다. 두 번째 회사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첫 회사에 비해 힘들었지만, 그만큼 즐거웠다. 이직 후 초반에는 개인적인 일들은 최소화하고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일에 적응한 이후부터는 다시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한두 개씩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강아지와 러닝을 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테니스 혹은 영어 회화를 배웠다.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별이나 야경을 보며 힐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해!!' 이런 집착이 아닌,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언제 연락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급한 일이 아니어도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했다. 일과 취미가 균형을 이루던 완벽한 일상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일은 흥미롭지 않았고, 무너진 멘탈은 회복하기 어려웠다. 모든 게 무미건조해졌고,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았다. 이 변화를 깨달은 게 2024년 초.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멈추기로 결심했다.


테니스는 역시 흙바닥에서 쳐야.. 느낌 있지 (테니스 다시 치고 싶다)


"하고 싶은 걸 찾아보려고 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내 퇴사 이유를 잘 표현할 말이 없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라서.


주위에 퇴사 소식을 전했더니 모두가 퇴사하고 뭐 할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나는 "계획은 따로 없고, 하고 싶은 걸 찾아보려고요" "무계획이 계획입니다"이라 답했다.


그 대답을 들으면 사람들의 반응은 딱 반반으로 갈린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아"

"계획도 없이 퇴사해? 여유 있네"

"MZ는 남다르네~"


그리고,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네. 퇴사하고 뭐 할지 기대돼"

"푹 쉬면서 열심히 놀아. 그동안 못 논 거 다 놀아"

"그래. 쉬면서 재밌는 거 많이 해야 또 일할 힘이 생기지"


전혀 다른 느낌의 대답이지만, 나쁘다 좋다는 없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아"라는 툴툴대는 말속에서 '다른 데 가서 적응하려면 힘들 텐데'라는 걱정이 느껴졌고, "MZ는 남다르네"에서 무작정 퇴사를 결심한 나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모두의 부러움과 우려 속에 나는 퇴사했다. 퇴사 후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계획은 없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다녀왔고, 평일 낮에 전시도 보고 영화도 보는 짜릿한 경험도 했다.

해 뜰 때 잠들기도 했고, 오후 1시 넘어서 일어나 보기도 했다.

드라마를 정주행 했고, 특히 어제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다시 정주행 하면서 새벽 내내 울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눈이 안 떠졌다. 이따 친구 만나러 가야 하는데 어쩌지 싶다.


아무튼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아침에 눈 뜨면 그날의 계획을 세우는 호사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직하는 그날까지 여유를 즐기며 다시 열정 가득한 마음 되찾기에 집중할 테다. 틈틈이 글도 쓰고. 용기를 내어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졌으니 이제 제 행복을 찾아 떠나볼 차례다: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