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현생에서 벗어난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
퇴사라는 큰 결단을 한 백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내게 있어서는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었다. 직장인으로 살며 업무와 사람에 치이며 여유를 잃어버린 나는 여백 하나 없이 가득 찬 마음이 힘들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두 달째 백수로 살며 마음의 여백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이다.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데 '레고'는 큰 도움이 됐다. 백수가 되자마자 3,772조각의 레고를 선물 받았다. 나는 마블과 레고의 엄청난 덕후인데,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지인이 퇴사 선물로 스파이더맨 레고를 선물했다. 그 큰 박스를 들고 오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발걸음만큼은 굉장히 가벼웠다.
요즘 나의 조건은 레고를 조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하루 24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백수. 남는 건 시간이고, 그동안 현생에 지쳤던 마음을 달래주기에 레고는 딱이었다.
레고 박스를 처음 뜯을 때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번호가 매겨진 봉투 안에 레고들이 가득하고, 두툼한 설명서를 보며 '아, 이거 언제 다 맞추지~ (기쁨의 반응)'라는 생각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때부턴 열심히 손을 움직이면 된다. 진짜 레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 이때부터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작디작은 수많은 조각들 속에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조각을 찾아 맞는 자리에 넣어주는 단순한 작업의 반복.
레고를 조립하는 그 순간은 나를 제외한 세상이 고요해진 기분이 든다.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로지 나와 레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아, 역시 단순 노동이 짱이야.
데일리 뷰글 건물이 1층부터 한 층 씩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짜릿짜릿했다. 척추가 굳어가고 온몸의 근육이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오전 7시에 책상에 앉아 레고 박스를 열었고, 이후 처음 일어난 시간이 오후 3시였다. 배고픔도 잊고 집중했다. 나에게 이런 집중력이 있었다니. 또 한 번 놀랐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할 것들, 선택해야 할 문제들이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그걸 '휴식'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누워있거나, 휴대폰을 하며 보내는 시간으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조용한 휴식과 친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나처럼. 나는 그런 이들에게 레고 같은 단순 노동을 추천한다.
꼭 레고가 아니어도 괜찮다. 종이접기, 퍼즐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면 된다. 복잡한 생각들은 잠시 내려두자. 정해진대로 손만 움직이면 알아서 머릿속도 정리되고, 나아가 하나의 작품까지 완성해 성취까지 얻을 수 있다.
퇴사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백수는 어색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가 좋은 이유는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레고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 대해 더 잘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