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생애 첫 자발적 퇴사를 한 7월 초. 낮 12시가 다 되어 일어나는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부재중 ‘OOO 대표님’
회사를 다닐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거래처 대표님이 부재중에 떠 있었다. 항상 나를 예쁘게 봐주셨고,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축하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었다. 퇴사 연락을 드렸을 땐 굉장히 아쉬워하셨고, 꼭 다시 보자며 응원해 주셨다. 나중에 이직하면 연락드리려 했는데, 갑작스러운 대표님의 연락에 당황스러웠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대리님~ 여행 잘 다녀왔어요? 퇴사하고 잘 쉬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아, 단순 안부 연락이었을까? 한동안 나의 퇴사 후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대표님은 ‘잘 쉬고 있냐’ ‘푹 쉬어야 하는데’ 등 나의 휴식을 챙겨주셨고, 그리고 드디어 그의 본론이 이어졌다.
“그래서, 언제 다시 일 시작할 거예요? 괜찮으면 나랑 일 같이 해볼래요?”
두둥탁! 퇴사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전에 사주 봤을 때 일복 가득한 팔자라더니. 역시는 역시였나.
생애 첫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제안을 받는 그 순간만큼은 능력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제안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바로 미팅 날짜를 잡았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였고, 무엇보다 대표님의 태도가 좋았다. 대표님과의 인연은 4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봐온 대표님은 일 할 때나 평소에나 변함없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직원으로 일하면 조금 피곤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열정 없는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미팅날. 최근 회사 이사를 한 대표님은 나를 새 사옥으로 초대했다. 대표님의 감성이 가득 담긴 멋진 사옥은 나를 유혹하기 충분했고, 한바탕 눈호강 후 본격적인 업무 내용과 처우 협의가 시작됐다. 대표님은 나에게 팀장 자리를 제안했고, 이외에도 좋은 제안들을 주셨다. 대표님과 오랜 대화 끝에 나는 "일주일 더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답변을 드리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은 제안을 승낙할까 싶다가도, 그다음 날이 되면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대표님은 좋은 제안을 주셨지만, 내가 고민한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 퇴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더 놀고 싶다.
- 열정을 잃어 퇴사를 했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기에 내 열정이 너무 바닥이다. 이건 회사에 민폐다.
- 내가 팀장이 될 만한 인재인가? 팀을 이끌 수 있는가?
- 대표님의 열정이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의 직원이 됐을 때도 그 열정을 멋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들과 걱정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거절이었다.
당시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됐고, 또 팀장직을 받아들이기에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2달 정도만 뒤였어도 바로 승낙했을 텐데. 거절하기엔 좋은 제안이었기에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자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카우트 거절 후 2달이 지났다. 아쉬움이 남느냐고? 대답은 NO다. 2달 동안 큰 일을 한 건 없지만,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가족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며 힐링의 시간들을 갖고 있다. 특히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보다 더 값어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절로 끝을 맺은 내 생애 첫 스카우트 제안. 나를 좋게 봐주시고, 기회를 주신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