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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Sep 23. 2024

백수가 돼서 비로소 찾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

회사를 그만둔 지 3개월이 됐다. 직장인이 된 후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는 탓에 여전히 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완성하지 못했다. 퇴사 전부터 꿈꿨던 여행도 덥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다. 못 해본 것 투성이라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바로 시간. 평일 9 to 6가 생겼을 뿐인데, 그동안 놓쳤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느새 9살이 되어버린 나의 강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요즘 나는 심리 상담을 받는다. 매일 스트레스가 쏟아지는 직장인일 때도 받지 않던 상담을 오히려 인간관계가 단순해진 백수가 되어 받고 있다. 백수의 시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초, 평소처럼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날 해야 할 내용들은 평소의 내겐 별 거 아닌 일들이었다. 단순히 사진을 배열하고, 예쁘게 잘 정리만 하면 됐다. 그런데 파일을 실행함과 동시에 정말 어려운 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지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 가득 켜진 포트폴리오 파일을 30분 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과거의 나였으면 1시간도 안 되어 끝냈을 일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멈춰버렸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왜 나는 퇴사한 지 2달이 되어가는데(8월 초 기준) 여전히 이 쉬운 일을 완성하지 못했을까. 


불안했다. 이직을 하면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불안했다. 과거의 스트레스들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게 불안했다. 프리랜서나 창업을 하는 것도 불안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마 더 불안해질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땐 내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곧이어 들이닥치는 업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이 불안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생긴 지금, 나는 나의 불안과 마주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 번도 불안을 대면해 본 적 없는 탓에 이겨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심리 상담 센터를 찾아가게 됐다. 


요즘 쓰고 있는 마음 노트


심리 상담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한 달가량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내 불안의 시작점을 찾았다. 아직 불안에서 완벽하게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불안의 근원을 찾으며 이겨내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불안들을 노트에 하나하나 써가면서 직접 마주했고, 단순히 몇 글자로 표현되는 불안들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차분히 심호흡을 하며, 상담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100%는 아니더라도 불안감이 줄어든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일부 지인들은 "시간이 많아지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생기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건 맞다. 하지만 난 나의 생각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를 이제야 듣게 됐다. 그 소리들이 조금 시끄러울 때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 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백수가 되니 비로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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