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수용성

by 지오


누가 들을까 봐 샤워기를 켰어.


후회와 서러움, 슬픔, 억울

많은 감정이 담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더라.


텅 빈 집에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샤워기를 켰어.

슬픔이 물줄기 사이사이 비켜나가지 않길 바라며,

화장실 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면서.


듣는 이 하나 없는데,

그래도 나의 슬픔을 들킬까 봐 입을 꾹 닫고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어.


그렇게 한참을 울었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인지 눈물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쯤

샤워기를 껐어.


샤워기를 끄고 나니 차마 물줄기와 함께 쏟아지지 못한 작은 슬픔 조각이 뚝뚝뚝.


거울을 보며 괜찮은 척을 해.

붉어진 눈가를 식히고 흔들렸던 어깨를 가다듬고.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처럼.


누군가 그러더라. 슬픔은 수용성이라고.

샤워기 속에 숨어 한참을 쏟아냈더니 슬픔이 절반으로,

세수를 한 번 했더니 거기서 또 절반으로,

아직 마지막 절반을 흘려보내지 못했지만 난 알고 있지. 언젠가는 말끔히 녹아내릴 거라는 걸.


물로 할 수 있는 만큼은 지워냈으니

나머지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랑하는 옥돌이와 함께 뛰면서,

애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슬픔을 지워가보자.


슬픔은 수용성,

그리고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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