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참 좋아했었다(지금은 아니란 의미는 아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속에 무수한 얘기가 숨어있을 것 같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살짝 묻어 있는 눈 때문인지, 어쨌든 작가는 저 팍팍한 곳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그린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살갑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눈이 만들어낸 지극히 왜곡된 나만의 해석일 것이다.
<라보엠> 중 로돌포가 미미의 손을 잡고 부르는 그 유명한 아리아,
내가 누구냐고요? 시인입니다.
무슨 일을 하냐고요? 시를 쓰지요.
어떻게 사느냐고요? 그냥 살 뿐입니다. 가난합니다. 하지만 꿈과 상상력과 공상의 성을 지을 생각이라면 백만장자의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점과 점을 잇는 게 인생이라던데...
저 안에선 이리저리 생겨난 점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이어보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흩어질 뿐 도저히 이어지지 않는 점으로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인 척하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쓱쓱 잘 이어지는 점이 어디 있냐고, 인생의 괴물과 닥치는 대로 맞서 싸우다 보면 없던 곳에 점이 생기기도 하면서 점은 이어진다고... 다 너 하기 나름이라고...
나는 어른인 척하면서 저런 말을 쉽게 내뱉던 사람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따뜻한 시선, 시와 예술 같은 거창한 말로 애써 치장해도, 가난은 그냥 무겁기만 한 가난일 뿐이다. 그 속에선 점을 만들기도 어렵고, 그 점들을 잇기는 더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쭉쭉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 때문에 저런 풍경은 사라지고 있지만,
로돌포와 미미가 없는 세상이 과연 있을까.
그러니 그저 입을 다물고 낮게 기원할 뿐이다.
저 안에도 아직 계절이 바뀌고,
무수히 많은 점이 찍히고,
가끔은 쉽게 이어지라고 말이다.
누구냐고요?
무슨 일을 하냐고요?
어떻게 사냐고요?
그냥 살 뿐입니다.
박은성, <사라져 가는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 116.8 x 91.0 cm, 2021년